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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아파트 아이들의 정서적 경향

득구 데리고 일요일마다 등산한지 석달 째 됐다. 한달 쯤 더 됐을 수도 있다.
처음엔 창원 동읍 앞산인 정병산에 올랐고, 이어 동읍과 북면에 걸쳐 있는 백월산에 두 차례 올랐다.
생각보다 득구가 잘 따랐다. 아마, 삼각김밥에 과자 한봉지 사들고 올라가는 재미쪽이 더 컸던 이유였을 거다. 
그래서 좀 더 욕심을 냈다. 종주계획을 잡은 것이다.
동읍 뒷산인 구룡산을 거쳐 천주산, 제2금강산을 넘어 마재고개를 통해 무학산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구간을 끊어 도전한다는 계획이었다. 총연장 30키로가 넘는 구간이다.
갈 때마다 정말 어렵게 아이를 깨웠고, 조금이라도 오르막이 가파르면 득구가 징징 울어댔지만, 그때마다 등산 전에 슈퍼에서 구입하는 옵션을 하나씩 늘이면서 설득했다.
과자 한 봉지에 음료수 하나, 내려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식이었다.
힘들게 종주를 하면서 문득 튀어나오는 득구의 감탄에 내가 감복하기도 했었다.
"우와, 정말 경치 좋다. 그치 아빠?"
"어떻게 이런 모습이 있을 수 있어?"
그런 의외의 말을 득구에게 들을 때의 희열이란...
등산하면서 만나는 어른들에게 한결같이 들었던 "꼬마가 대단하구나!" 하는 말에 득구는 멀찌감치 오는 등산객한테도 "안녕하세요!"라며 크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칭찬 들으려고^^
그렇게 만 두 달을 채워서 무학산 종주를 끝냈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그 다음에 잡았던 코스가 창원 방향의 정병산, 비음산, 대암산, 불모산 종주였다.

그런데 그 다음주 일요일 아침,
득구가 갑자기 변했다.
아예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다가, 계속 깨우니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안 갈거야. 다 갔잖아?"
"아니, 간다고 했잖아? 창원쪽으로?"
"싫어. 재미도 없고. 억지로 갔단 말야."
"그래, 그건 아는데, 약속했었잖아? 그럼 너, 등산 안 가는 대신 약속대로 태권도 도장 다닐래?"
"싫어, 그것도. 난 운동하기 싫단 말야. 컴퓨터도 못하고..."
아... 기어코 컴퓨터 이야기가 나오고야 말았다.
"맨날 12시 전에 온다고 해놓고는 약속도 안 지키고. 오전엔 컴퓨터 한 시간도 못한단 말야!"
"오후에 하면 되잖아. 그리고 무슨 운동이든 해야 한다는덴 너도 동의했잖아?"
"싫어, 싫단 말야. 왜 억지로 해야 돼. 난 하기 싫은데!"
아, 이거 당분간은 안 되겠군. 밀어부칠 수가 없었다.
당분간 소강기를 두기로 하고, 난 그 다음 몇 주동안 혼자서 가거나 그 사이 따라다니고 싶어하던 진구를 데리고 가는 방법으로 득구를 자극했다.
그 자극이 통했던지, 아니면 요즘 부쩍 "태권도 도장 다니라"는 엄마 이야기에 위협을 느낀건지 득구는 3주 전부터 다시 등산을 재개했다.
다시 시작하고 처음 2주 동안은 진구와 함께 갔고, 지난주 일요일에는 정병산 지나 우곡사 갈림길부터 비음산 정상까지 둘이서 등산을 했다.

지난주 등산을 하면서 득구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나 있잖아. 태권도 배우기 싫어! 안 하면 안 돼?"
듣는 내가 안쓰러웠다.
요즘 들어 학교의 체육 선생님이 계속 득구에게 "너는 체력은 있는데, 자세가 안 나와. 끈기도 없어보이고. 그러니 태권도라도 배워라"라고 볼 때마다 이야기를 해왔던 모양이다.
게다가 동료 교사인 아내마저 "이번 방학 땐 한 달이라도 한번 배워봐"라고 기정사실화 하니 득구의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이다.
아마, 등산을 다시 시작한 이유도 태권도 압박이 컸던 것 같다.
함께 등산하는 동지로서, 아빠가 태권도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줄 희망이 된 것이다.
난 그냥 그러고만 말았다.
"이 녀석이, 왠 일로 등산을 따라오더라 했네."
그 뒤엔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혼자 생각으로 '일단 주변의 태권도 도장이나 한번 둘러봐야지' 싶었다.

내가 생각이 깊어진 이유는 또 다른게 있었다.
'하기 싫어하는 애를 억지로 시킬 수 있나?" 하는 생각 말고도.
득구가 아예 운동을 싫어하거나,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은연중에 집안에서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면서 지내려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득구는 분명히 말했었다.
"왜 억지로 (운동)해야 돼. 난 하기 싫은데." "난 운동하기 싫단 말야. 컴퓨터도 못하고."
그러고 보니 요즘들어 주말이나 일요일에 "밖에 나가자"는 나의 말에 "싫어. 컴퓨터 할 거야." "TV 볼 거야"라며 단호하게 거부하는 횟수도 많아졌다.
초등학교 3학년, 머리가 굵어진 탓도 있겠지만, '집안에서 놀고 싶다'는 자기 생각을 점 더 분명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셈이다.
아, 결국 고층 아파트의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드러낸다는 그 현상이 득구에게도 뚜렷해진 것일까.
"나, 밖에 나가기 싫어!"
밖에 나갈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단계에서 아예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현상으로 굳어지는 경향 말이다.

2010. 6. 16  정서적 경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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