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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수컷의 냄새

나도 가끔 직장의 후배들에게서 '남성'을 느낄 때가 있었다.
이런 건 뭐, 같은 남자인 내게 게이 성향이 있다 없다는 차원과는 다르다.
특히 남자 후배들이 직장 안에서건 바깥 술자리든 몇몇 여자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나 혼자 은밀히 느끼는 그런 직감 같은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대화를 주도하려 애쓰고, 대화에서 빠지지 않으려 기를 쓴다.
이럴 때 그들에게서는 원초적인 수컷의 냄새가 난다.
발정기의 수컷처럼 혀를 내두르거나, 코를 벌름거리거나, 꼬리를 비벼대는 형상을 연상하게 한다. 

<남자아이 심리백과>라는 책에서 저자 마이클 거리언은 남자들의 이런 심리를 본능이라고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우리는 곳곳에서 남자아이들의 생태를 엿볼 수 있다. 운전하면서 공원을 지나다보면 축구를 하는 남자아이들을 자주 접한다. 그들은 공간 내에서 물체를 움직임으로써 자아상을 발전시키고 공간 운영의 복잡한 규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농구 코트가 있는 길을 지날 때에는 셔츠를 벗어던진 채 땀을 흘리며 몸싸움을 벌이는 남자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공간 내에서 경쟁적으로 물체를 이동시키고 있다. 남성의 생태가 드러나고, 남성의 생태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이렇게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테스토스테론'의 지배를 받는 남성의 성적 충동과 공격성, 부불어오르는 근육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원초적 본능으로 저자는 규정했다. 평생 1조 개가 넘는 정자를 생산하는 남성들이 대략 한 달에 한 개꼴로 사춘기부터 폐경기까지 몇 백 개의 난자를 만드는데 그치는 여성 앞에서 어떻게 본능을 숨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득 그의 이야기 중 다음 구절에서 아들 득구를 떠올렸다.  
'남자아이들은 여자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남자아이들의 뇌는 지금도 계속 외치고 있다. "우리에게 더 넓은 공간을 주세요" 그 뇌는 야외에서 스스로 놀이를 만들고 즐기면서 재창조된다. 농구, 축구 등의 경기는 넓은 공간에서 사물을 움직이는 기량을 발전시키도록 뇌의 기능을 돕는다.'
수컷의 본능이 비단 암컷 앞에서 존재를 극대화하고 대화를 주도하는데만 나타나지 않고, 축구장에서 농구장에서 이 거리 곳곳에서 그들의 경쟁적 동작으로 표출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공간의 확보! 확보한 공간의 이동을 통한 자아상의 확대!

여기서 내가 열살 짜리 아들 득구를 생각한 이유는 아파트 때문이다.
득구가 아파트 안에서 더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남자아이의 본능과는 상치되는 셈이다.
가족들과 주로 어울리는 거실이나 안방, 부엌에서 그는 가만히 앉아 TV를 보거나 밥을 먹는 행동 외에는 언제나 제약을 받는다. 뛸 수 없고, 동생 진구와 뒹굴 수 없다. 아래층에 영향을 줄 층간소음 때문이다. 
득구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은 아이들방의 컴퓨터 앞 정도다. 움직이지 않고, 그래서 뭐라 잔소리 듣지 않고 맘껏 노는 장소다.
그것도 한 시간 쯤 지나면 게임 너무 오래 한다고 엄마 아빠한테 제지를 받게 되지만.
요즘 득구의 행동이 거칠어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파트 안에서는 언제나 묶이는 행동, 그래서 득구의 공간 확보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초적 수컷의 본능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고함소리로, 거친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득구 진구 -스트레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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