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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득구 진구 - 스트레스

아침이 문제다.
스트레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아침이다.
통제도, 여과도 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표출된다.
특히 바깥 공기를 전혀 씌지 않은 아파트의 아침은 더 그렇다.
폐쇄된 공간이 불쑥 솟아오른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거나 부채질한다.
나쁜 감정의 화살이 마치 당구대 위의 다마(?)처럼 한정된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벽에 부딪히고 또 부딪혀서 결국 어느 누구에게 충돌한다.

득구와 나, 득구와 엄마, 나와 아내는 그렇게 아침이면 곧잘 감정이 충돌한다. 물론 누적된 스트레스의 결과다.
8시가 돼도 일어나지 않는 득구, 8시 30분이 돼도 옷 하나 제대로 입지 않은 득구, 나와 아내는 그래서 밤새 사라지지 않은 스트레스의 노예가 된다.
"안 일어나나? 8시다 8시!" "야가 정신이 있나 없나? 아직 옷도 안 입고!"
이 정도면 곱게 표현한 거다.
아침이면 영 말이 없는 아내, 그래서 말 대답이 시원찮고, 어느 때는 한 마디 말없이 출근해버린다. 대개 이런 일로 나는 아내에게 불쑥 불쑥 감정의 화살을 날려버린다.
"뭘 물으보면 대답 쫌 빨리 하먼 안 되나?"
말투가 고울 리 없다.
말 해 놓고는 후회할 일을, 이미 쏟아버리고는 후회할 일을 매번 반복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우종민 박사는 저서 '마음력'에서 독특한 구분을 했다.
콘크리트형 인간과 숲형 인간.
이를 주택형태로 적용해 아파트형 인간과 단독주택형 인간으로 이해하면 지나칠까.
'어떤 환경에 사느냐에 따라 인간의 뇌에 만들어지는 복잡성도 차원이 달라진다. 온종일 네모 반듯한 아파트에서 네모 반듯한 학교 건물로, 또 네모 반듯한 상가건물의 학원으로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이 무엇을 보면서 자라겠는가. 이렇게 단순한 환경을 보며 자란 아이의 뇌에 복잡한 차원이 만들어지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반면 자연에서 뛰놀며 자라는 아이는 뇌에 복잡성이 높게 만들어지므로 창의력이 높아지고 상황에 따른 대처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 욕심 같아서는 콘크리트 더미를 제발 좀 부수자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땅도 좁고 경제 형편상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최소한 네모 반듯한 성냥갑 모양으로는 만들지 말자고 부탁하고 싶다. ... 마음의 유연성을 회복하려면 숲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는 콘크리트형 인간과 대비되는 우리의 지향점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이면 때때로 득구를 못살게 군다.
"야, 일어나~ 나가자! 운동하러"
물론 득구가 아빠를 따라 일어나는 건 극히 드물다. 역으로 득구에겐 잊었던 스트레스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될뿐이겠지. 
하지만 요즘 일요일 아침에는 득구를 깨우는데 성공하고 있다.
함께 등산을 다니는 것이다.
물론 힘들다. 한번 데리고 나가는 게. 과자에 컵라면에, 내려와서는 아이스크림까지 온갖 안 좋다는 먹거리를 미끼로 설득을 한다.
어쨌든 나는 아침에 아파트를 벗어나는 일이 좋다.
1층 현관을 나섰을 때, 코에, 온몸에 휘감기는 싸늘한 공기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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