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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득구 진구 10 - 득구와 엄마


이 구절을 읽을 때 나는 마음이 아팠다.
'소년들의 격렬한 활동성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마련해주라.'
'아들 심리학'의 마지막장 '우리의 아들들에게 꼭 필요한 것' 한 대목이다.
나는 그 대신에 이제 열살 득구, 여섯살 진구에게 "(아파트에서) 제발 뛰지말고 가만히 좀 있어라!"고 병적으로 고함을 질러대온 것이다.
환장할 노릇이다.

'활동성은 나이 어린 소년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10대 소년들도 만나기만 하면 서로 부딪치고 밀쳐대기에 바쁘다. 소년들은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되는 때조차도 몸과 몸을 부딪친다.'
몇 번의 짧은 여행 때를 제외하고 득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아파트를 벗어난 적이 없다. 더구나 여덟살 이전까지는 혼자서 아파트 밖을 직접 나온 적도 없다. 
아파트는 득구에게 사실상 이 세상의 모든 공간이었다.
그렇게 울타리를 쳐놓고 그것을 의식하는 못하는 아이에게 소년으로서의 본능은 아랑곳없이 울타리 안의 통제된 행동을 원해왔던 셈이다.  

아 참, 득구에게 아파트만큼 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던 또 하나가 있다.
'엄마'다.
물론 일 하는 엄마라, 함께 있는 절대적 시간은 모자랐지만 정말이지 그 애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던 엄마였다. 온 몸으로 번져가는 아토피 치료를 위해 일주일 7일을, 하루 2시간씩 씻고 바르고 비닐로 싸고 또 벗겨서 씻겼던 엄마였다.
그런데 그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렸다.
네살 밑 동생 진구에게로 날아가 버렸다.
'어머니는 사랑을 주고, 사랑을 베풀며,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대지와 같은 존재다. 어머니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아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그리고 안전한 집에 있음을 의미한다. 어린 아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시기에 뭐든 감싸주고, 보호해주고, 보살펴주는 어머니를 경험한다.-에리히 프롬'
그런 엄마가 득구에게서 멀어졌다. 둘 중의 하나가 됐고, 오히려 덜 신경써는 하나가 돼버렸다. 득구는 뭐가 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배회하기 시작했다.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들 심리학'에서는 '아들과 엄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많은 소년들에게 어머니는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믿음의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은 삶의 굽이굽이마다 엄청난 상실감에 시달리게 된다. ...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소년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모든 일에서 거의 옳다고. 엄마가 대체로 자신을 이해해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엄마의 입장에서 옳은 답을 찾아준다는 것은 엄마가 아들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구분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런 경향은 득구한테도 매번 느끼게 된다.
득구는 아빠에게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객관적이다. 어떨 땐 대놓고 무시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렇지 않다. 무슨 말을 해도 거의 믿는다. 내 입장에선 거의 전적인 신뢰로 보인다. 그래서 화가 날 때도 많다. 

 
아이에게 엄마와의 관계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했다.
결핍된, 혹은 부족한 모자 관계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훗날 이성관계에서도 그런 식의 부정적 의식이 작용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가끔 말한다.
멀어진 엄마로 인한 득구의 배회, 방황.
몇 년간 축적된 그런 현상이 요즘 때로는 냉담한, 무뚝뚝한, 때론 거칠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하지만, 아내는 돌아 눕는다.
"또 그 이야기냐"고.
"나도 힘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