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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지방자치 실전상식 - 경남의 주민자치 사례

지방자치 실전상식 - 경남의 주민자치 사례

 

대전시 유성구의 주민참여예산제, 순천만에서 정원도시로 이어진 순천시 생태수도 추진, 사람이 반가운 수원시의 휴먼시티 조성.

이시원 경상대 교수가 강연을 듣던 공무원들이 졸고, 빠져나가려 하자 꺼내들었던 비장의 카드가 이처럼 지방자치를 살아 꿈틀거리게 만드는 실제 사례들이라 했다.

공통점은 단체장이 바뀌어도 10년 이상 지속됐다는 것이다. 관련 조례와 예산·부서·인력을 확보하면서 정책 지속성을 보장했다. 그러면 경남에는 그런 사례가 없나?

 

남도와 18개 시·, 1991년 자치의회 부활 이후 25년 이상 지속된 경남 지방자치 역사 속에 모범 사례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례를 찾는 노력을 아껴 지난 4홍준표가 선사한 도민들의 직접 지방자치 사례를 취재하기로 했다. 2014년 진주의료원 폐원 이후 도민들이 추진한 주민투표’, 2015년 학교 무상급식 지원중단 이후 도민들이 추진한 홍준표 주민소환등 둘이다.

물론 이를 신나는 사례라 할 수는 없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례도 아니다. 갈등과 대립, 마찰의 결과요, 주민투표나 주민소환투표를 성사시키지도 못했다. 과정에서 추진 주체가 불법혐의로 구속되는 오점까지 남겼다.

하지만, 직접민주주의 실현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각인시킨 피땀 어린 경험이었기에 여기 남긴다.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

첫 출발은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위한 주민투표'였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만성적 적자, 귀족노조 전횡 등을 내세워 진주의료원을 20137월에 폐업했다. 이에 진주의료원 재개원 대책위는 주민투표를 추진했고, 경남도가 주민투표 대표자 증명서를 내주지 않자 행정소송 끝에 20157월 서명부를 제출했다.

 

 

 

 

주민발의, 주민소환과 함께 대표적 주민자치제도인 주민투표는 '특정한 정책이나 사안'에 대해 주민 의견을 묻는 것이다. 요건은 해당 자치단체의 선거인 5% 이상이며, 주민투표 진행 승인 여부 권한이 자치단체에 있다.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 청구에 대해 경남도 주민투표청구심의회는 같은 해 9"서명 중 47.2%가 무효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144387건의 서명 중 67888건이 거주지 불일치, 서명부 위·변조, 동일인 중복 서명 등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심의회는 주민투표 측에 10일 간의 보정기간을 주었지만, 제출 기한인 912일 정오까지 보정 서명부는 제출되지 않았고, 주민투표 청구는 결국 각하됐다.

 

문제가 제기됐다. 진주의료원 폐업과 같이 경남도청이 집행한 정책을 대상으로 하는 주민투표 심의를 도청이 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주민투표운동본부 강수동 대표는 "주민투표라는 게 자치단체 정책이 대상이 될 때가 많다. 이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 건데 주민투표 사무처리를 당사자인 도가 하는 건 맞지 않다. 주민소환 업무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하듯이 주민투표도 선관위와 같은 객관적 기구에서 해야 공정성이 보장될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주민투표·주민소환 전문가인 하승수(녹색당 공동대표) 변호사 역시 "주민투표법 제정 당시 심의 기능을 지자체에 준 게 잘못이다. 그런 사례가 없다가 서울시 무상급식, 경남도 진주의료원 폐원 등 주민투표 사례가 생기면서 폐단이 드러나고 있다. 주민소환처럼 선관위와 같은 제3의 독립기구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심의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게임은 주민투표 측의 KO패로 끝났다. 20165월 창원지검 공안부는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 청구인 서명 과정에서 905명 인적사항을 도용 후 임의 기재한 혐의(사문서위조·개인정보보호법 위반·범인도피 등)(·당시 45) 씨를, 씨가 주도한 서명조작에 가담한 혐의(사문서위조 등)(·30)·(31) 씨 등을 구속기소했다. 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합천지역 아동센터에서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 청구인 서명부에 300여 명분을 임의 기재하고 ·씨와 공모해 570여 명분을 추가로 허위 서명했다는 혐의였다. 이후 창원지법은 1심과 항소심을 거쳐 씨에게 징역 10월 실형을, 씨와 씨에게 징역 8·집행유예 2년 실형을 선고했다.

홍준표 치하의 첫 주민자치 행사는 이처럼 심각한 도덕적 상처를 안은 채 참패했다.

 

홍준표·박종훈 주민소환 운동

2016년은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와 박종훈 도교육감에 대한 맞불 주민소환 운동으로 점철됐다.

박종훈 주민소환운동 과정에서는 진주의료원 주민투표 때보다 훨씬 규모로 허위 서명부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홍준표의 측근이었던 박치근 전 경남FC 대표와 박재기 전 경남개발공사 사장이 항소심 끝에 징역 16월이 확정됐다. 박권범 전 경남도 복지보건국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 정모 전 경남FC 총괄팀장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에 소환되는 박치근 전 경남FC 대표(왼쪽)와 박재기 전 경남개발공사 사장.

 

 

창원지법 재판부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민소환제도를 악용했다. 이는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까지 훼손한 중대한 범죄라고 판시했다. 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고, 도민 개인정보를 무더기로 유출·동원했으며, 대규모 허위서명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홍준표의 측근들의 범죄 내용을 판결문을 근거로 다시 살폈다.

교육감 주민소환 허위 서명에는 모두 26명이 연루됐다. 박치근 전 경남FC 대표, 박재기 전 경남개발공사 사장, 박권범 전 경남도 복지보건국장, 도 사무관 공무원, 도지사 비서실 직원, 경남FC·경남개발공사 직원, 대호산악회 회원 등이다. 이들은 201511~12월 도민 19만 명분 개인정보를 빼내 교육감 주민소환 청구인 서명부에 2300명분을 허위 기재했다.’

 

주민소환은 '선출직 지방공직자' 전반적인 행정·결정 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주민들이 나서 통제하는 제도다. 광역자치단체장은 도내 선거인 10% 이상으로, 경남은 267000 명 이상 서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청구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한다.

홍준표 측근들은 주군이 주민소환 대상으로 몰리자 이를 희석하고, 결집력을 약화하기 위해 공직을 휘둘러 불법을 자행하면서 맞불 성격의 교육감 주민소환운동에 앞장섰다.

 

이후에도 홍준표 주민소환 운동은 20169월까지 계속됐다. 35만 명이 참여한 도내 최대 규모의 직접민주주의 실험이었다.

과정을 압축하면 20156월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서명운동에 돌입해 20161월 서명부 2차 제출까지 35만 명이 서명에 참여, 관리기관인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가 최종 26만 명의 서명을 유효로 인정했다.

 

 

하지만, 57000명 분이 주민소환 청구권자가 아닌 사람의 것으로 처리됐고, 나머지 8만 명의 서명을 보정하라고 선관위가 요구했음에도 충족하지 못함으로써 주민소환 투표는 끝내 불발했다.

 

이 과정에서도 허위 서명 혐의가 있었다. ··동이 구분되지 않은 서명 441명 분을 새로운 서명부에 옮겨 적은 혐의로 창원시 내서읍 주민 2명이 구속됐고, 4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불법의 정도는 상대적으로 약해 이들 중 1명만 징역 6·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경남의 주민자치는 이처럼 불법이 난무하는 오명 속에서 첫걸음을 뗐다. 주민자치의 꽃을 피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처절한 교훈으로 돌아왔다. 관련 법상, 유효 서명의 틈바구니가 얼마만큼 협소한지 철저하게 각인시킨 계기였다.

 

2017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