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

지방자치 실전상식 - 빼앗긴 도지사 선거(완성)

49일 밤에 일어난 일을 경남도민들이 어찌 잊을까.

 

당시 홍준표 경남지사는 예고한대로 대통령 선거일 30일 전 공직자 사퇴시한에 임박한 9일 자정 직전에 지사직을 사퇴했다.

사퇴통지서를 받을 박동식 경남도의회 의장은 10일 오전 03분께 도의회 현관에 나와 이렇게 밝혔다.

"홍 지사가 보낸 사퇴통지서가 9일 오후 1157분 전자 우편으로 58분 인편으로 도의회에 도착했다."

 

홍준표 전 지사가 사퇴시한을 3분 앞둔 4월 9일 오후 11시 57분에 사퇴 통보를 했다고 밝힌 경남도의회 박동식 의장./경남도민일보

 

 

같은 시각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12시 현재 도청으로부터 도지사 사퇴 통지가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제35(보궐선거 등 선거일)에서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는 관할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가 그 사유를 통지받은 날이 '선거 발생 사유가 확정된 때'로 규정한 만큼 경남도지사 보궐선거는 최종 무산됐다.

 

사퇴시한 직전인 9일 밤 사직서를 내고 권한대행이 100시 이후에 궐위 사유를 선관위에 통지하면 보궐선거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홍 지사가 두 달 전에 이미 예고했고, 그의 의도는 결국 실현됐다.

 

20일 전인 320일 도청 간부회의에서 홍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본선에 나가기 직전 사퇴하면 (도지사)보궐선거는 없다. 보궐선거를 하면 200억 원 이상 돈이 든다. 또 제가 사퇴하면 도내 선출직 공직자의 '줄사퇴'가 나온다. 선거비용 수백억 원을 부담하게 된다, 그런 일(보궐선거)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한 달 전부터 이야기했다."

공직선거법 355항 보궐선거 사유발생 시점, 2005항 공직자 사퇴 통보, 2034항 동시선거 규정 등의 맹점을 활용해 사퇴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법으로 보궐선거 사유를 없애겠다는 계획은 홍 지사 말대로라면 이미 2월부터 공개된 셈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눈 뜨고 코 베인다고 했나?

홍 지사가 두 달 동안 틈만 나면 도지사 보궐선거는 없다.” “사퇴시한 직전에 사퇴하면 보궐선거는 없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지만, 경남도민들은 눈 멀쩡히 뜨고 그 꼴을 봐야 했다.

결국 도민들은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권과 피선거권, 즉 참정권을 박탈당했다. 지방자치의 핵심인 단체장을 새로 뽑을 기회를 빼앗겼다. 그 결과 경남도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12개월 이상 역대 최장기간 도지사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하게 됐다. 대선 당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는 본인의 피선거권은 확실히 챙기면서 340만 도민이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해도 되느냐"고 펀치를 날렸지만 무위였다.

 

홍 지사의 버티기에 도민들이 속수무책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끌어냈던 박근혜 퇴진 경남운동본부를 전신으로 하는 '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44일 창원지방검찰청에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로 홍 지사를 고발했다.(사진) 경남운동본부는 도내 4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한 연대조직이다.

이들은 홍 지사는 공직선거법 맹점을 악용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법에는 '도의회 의장에게 사임일 10일 전까지 사임통지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정영훈 위원장과 정의당 여영국 도의원은 도지사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선수를 치면서 '참정권 실현'에 나섰다.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7일 성명서에서 홍 지사는 도민 참정권은 물론 지방자치권을 훔친 도둑에 불과하다. 대통령 후보 자격은 가당치 않다. 즉시 선관위에 도지사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촉구했다.

 

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김영만 상임대표가 4월 4일 창원지검에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로 당시 홍준표 지사를 고발했다./경남도민일보 

 

홍 지사가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3월 30일 이후 사퇴했던 49일까지 도내 곳곳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성명서를 냈지만 홍의 막무가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법적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 여기서 오늘 지방자치 실전상식의 본론으로 들어가자.

 

홍 지사가 막판 버티기를 했던 10일 동안 도민들은 왜 촛불을 들지 않았을까?

작년 10월부터 올 3월까지 창원광장을 비롯해 도내 수십 곳에서 20차례 이상 주말마다 촛불을 모아 박근혜 정권을 붕괴시켰던 민중의 힘이 왜 홍준표 앞에서는 결집되지 않았을까?

당시 홍준표의 독주를 막는 방법은 법에 있지 않았다. 공직선거법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를 홍이 악용했기 때문에 이를 법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기자회견이나 성명서로 물러설 홍준표가 아니라는 상식쯤은 진주의료원 폐원과 학교무상급식 예산지원 중단 사태 때 확인됐다.

결국 여론전 밖에 답이 없었다. 특히 홍 지사가 대선 후보였기 때문에 여론전은 먹힐 가능성이 컸다. 도민들이 도내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일어났다면 당시 보수 1당의 대통령 후보가 겁을 먹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촛불혁명은 유력한 정치참여 방식이고, 지방자치 또한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통한 단체자치 외에 주민자치와 주민참여가 다른 한 축이다.

 

지방분권운동경남연대 대표인 안권욱 고신대 교수는 홍준표의 참정권 박탈은 결국 주민들의 지방정부 참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만행이다. 그만큼 지방정부나 단체장이 주민들을 두려워하지 않지 않고 군림하려 한다. 원인은 주민에게도 있다. 지방자치에 관한 한 주민들의 주체 의식은 아직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결론으로, 적폐청산 경남운동본부 김영만 상임대표에게 홍의 버티기 과정에서 촛불시위를 검토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3월 들어 창원광장 촛불시위 때 홍준표의 도지사 꼼수사퇴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큰 주제는 박근혜 탄핵이었고, 탄핵이 되자 촛불시위는 마무리가 됐다. 20차례 이상 촛불시위를 하면서 고생도 했고, 성공도 했다. 그때는 홍준표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홍준표가 대선 후보가 됐는데도 사퇴를 안 하는 법꾸라지 행태를 보였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직무유기, 직권남용으로 검찰에 고발하고, 국회까지 가서 홍준표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당시 동력으로 촛불시위를 계획할 수는 없었다.”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몰아내듯 뚜렷한 지방자치 정신으로 촛불시위를 만들어냈다면 당시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지, 김 대표에게 다시 물었다.

이런 생각이 든다. 홍준표가 퇴임하던 날 우리는 소금을 뿌렸다. 그 행위가 홍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홍이 김해 유세 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도지사를) 잘 했는데 만날 집 앞에서 데모나 하고, 소금이나 뿌리고, 도둑놈들.’ 저런 악담을 하는 걸 보면 도민들을 도둑놈 취급한다는 거고 그만큼 여론에 위축됐다는 게 아닐까. 어쨌든 멀리 있는 대통령보다 가까이 있는 도지사가 중요하다. 홍준표 밑에서 우리는 정말 처절하게 경험하지 않았나?”

 

며칠 뒤 김 대표는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와 탄핵 당시 새누리당 경남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친박 집회가 도내 곳곳에서 열릴 정도로 동력이 살아있었지만 예전 새누리당 텃밭의 기운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홍준표나 홍 도정에 대한 지지율은 그만큼 추락하지 않았다만약 홍이 도지사 보궐선거는 없도록 하겠다고 공표한 당시 반홍 기치로 촛불시위를 했다면 새누리당 도내 지지세력의 역공이 있었을 것이다. 호시탐탐 재기의 발판을 노리고 있던 그들에게 교두보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빗줄기 속에서도 1만명이 넘는 촛불 군중들이 창원광장 집회에 이어 상남동까지 행진을 했다./경남도민일보

 

 

하지만 김해연 전 도의원은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는 적폐세력을 방조 또는 방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남의 지방권력을 바꿀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면서 이런 일은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 제도를 강화해서 더 이상 도민들이 우스운 꼴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제도 강화에 해당되는 움직임이 홍준표 방지법발의다. 현재 무소속 윤종오 의원과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 공직선거법 보궐선거 발생 시점을 바꾸는 내용의 '홍준표방지법' 발의를 공표한 상태다. 현행 공직선거법 35(보궐선거등의 선거일) 5항은 대통령 보궐선거와는 달리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는 그 사유의 통지를 받는 날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도 대통령과 동일하게 그 사유가 발생한 날로 규정해 법적미비를 보완한다는 내용이다. 미리 바꿨더라면 홍준표 꼼수 사퇴도 없었다.

 

이제 지방자치 실전상식을 되새겨보자.

우선 홍준표가 도지사 선거를 무산시킨 것을 참정권 박탈이라고 할 때 그 참정권은 국민이 직접 ·간접으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선거권 ·피선거권 ·국민투표권 ·국민심사권 ·공무원과 배심원이 되는 권리 등이 포함된다. 협의로는 선거권과 피선거권만을 말한다.

 

다음은 지방자치법이 보장하는 주민참여제도다. 정책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 정부 정책 중 특정 지방자치단체에 관련되는 문제이거나 또는 그 지방자치단체 자체의 정책과정에 대해 그 지역 주민이 요구·교섭·투표 등을 통해 관여하는 일 또는 관여 행위를 주민참여라 한다.

주민참여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선 지방자치법에 규정된 조례의 제정·개폐 청구, 사무감사 청구, 의회해산 청구, 수장·의원·주요 공무원의 해직 청구가 있다. 다음으로 행정에 대한 불복신청이나 주민감사를 청구하는 주민소송 및 청원·진정이 있다. 이상은 행정의 대응과 상관없이 주민 측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한 실행이 보장되어 있는 제도이다. 이것에 대해 행정의 이해와 협력이 없으면 실시 불가능 또는 유효성을 갖지 않는 참여방식으로 주민투표, 주민소환, 공청회, 심의회, 주민활동에 대한 정보제공 등의 편의제공 등이 있다.

 

2017년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