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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투명인간이 된 진구

진구라고 아세요?
제가 작년에 냈던 <아파트키드 득구> 속에서 득구 동생이죠.
아파트 안에서 틈만 나면 발을 콩콩 굴러서 엄마 아빠를 안달하게 했던 아입니다.
아파트에서 가장 무서운 층간소음이 되는 거죠. 그래서 아래층 분들이 당장 올라온 경우도 있었구요.
그렇게 하면 엄마 아빠가 환장한다는 것을 잘 알고, 그걸 무기로 삼는 영악한 아이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진구같은 경우가 많더군요.
"우리 애도 그래요. 정말 공감이 가더군요."
책 내고 나서 가장 반가웠던 순간 중의 하나였습니다.

책 속의 진구는 사실, 제 둘째 아이 '호준이'입니다.
이 블로그 앞쪽에 나오는 땅콩집에 등장했었죠.
깜찍한 외모, 생글생글한 웃음, 순전히 아빠인 제 평가이지만, 어쨌든 저희 집안의 귀염둥이입니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 진구 때문에 온 집안이 밤마다 난립니다.
특히 저녁시간에 평화롭게 밥을 먹다가, 채 10분도 안 돼 완전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 버리죠.
저녁마다 순서는 똑 같습니다.
엄마가 진구 밥을 떠먹입니다.(호준이가 밥을 잘 안 먹고 삐쩍 말라가니까 할 수 없이)
진구는 뺀질거리며 돌아다니다가 형인 호정이(왜, 책 속의 득구 있잖습니까^^)를 건드리죠. 
급기야 화가 난 형이 한 대 때립니다. 싸움이 벌어지죠.
엄마가 진구에게 뭐라고 합니다.
그러면 고래고래 고함지르고, 발을 콩콩거리고, 난리가 벌어지죠.
결국, 아빠가 화를 버럭 내면서 준이에게 손찌검 흉내까지 내게 되죠.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은 단계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사실은 그 다음 때문에 저녁시간의 조촐한 평화는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빠가 엄마를 걸고 넘어지는 거죠. 제가 아내에게 화살을 돌리는 겁니다.
"이젠 밥 안 떠먹여주면 좋겠어"
"당신이 애를 감싸기만 하니까, 이젠 통제가 안 되잖아"
제가 그렇게 말하면,
"또 왜 나보고 그러는데.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야"
저녁을 준비하며, 또 밥을 먹어며 한 10분간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어지는 거죠.
오늘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저는 작심하고 아내에게 주문했습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돼. 당신이 애 사랑하는 방법을 바꿔야 돼"
어제처럼 반발하던 아내가 화가 났던지 "알았어" 하며 회초리를 들려고 하기에 "누가 때리래. 고민해서 지속적인 방안을 찾아야지" 하니까 아내는 "나더러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하면서 밥숟가락 탁 놓더군요.
또다시 옥신각신.

그리고는 잠시 잠잠하더니, 아내가 이러더군요.
"지금부터 준이는 투명인간이야. 지 힘으로 밥 한그릇 다 먹기 전까지는 아무도 준이랑 이야기하면 안 돼"
엄명이었습니다. 저도 흔쾌하게 "그거 좋은 방법이네"하며 동의했죠.
그리고는 가족들이 딱 한 시간을 정말 준이랑 말을 안 했습니다.
준이가 끝까지 말을 붙이자 호정이가 "밥부터 먹어" 했다가 엄마한테 혼이 났죠.
"준이한텐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준이, 미치더군요.
그래서 또 발로 쿵쿵거리더군요.
반응해선 안 되는데 그건 또 못견디겠기에 제가 "이노무 XX가 고마 확" 해버렸죠.
아파트살이의 어쩔 수 없는 아킬레스건...
어쨌든 또 투명인간 만들기를 계속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지시한 엄마에게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항의하는 호준이.
하지만 엄마가 꺼낸 방법 아닙니까. 끄떡없었죠.
결국, 밥은 거들떠 보지도 않던 준이가 한 시간만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어치우더군요.

준이 나이 지금 만 5세 하고 6개월.
제가 궁금해서 준이 일과를 파악해봐도 그 전과 다른 변화는 특별히 없는데,
그럼, 준이가 요즘 보이는 현상이 뭐하고 상관이 있을까요?

그리고 한 달 뒤.

진구는 이제 아빠와 눈도 잘 안 맞춥니다.
드러내놓고 "아빠 싫어" 합니다.
아빠가 말을 걸면 짜증까지 냅니다. "말 걸지 마!" 라구요.
아, 나의 진구....
갸름한 얼굴 생글생글거리는 장난꾸러기 진구가 어떻게 하면 아빠를 졸졸 따라올 수 있게 할까요?

이게 어려운 이유는,
아빠가 생각할 땐 이런 겁니다.
어제, 그러니까 5월 22일 저녁이었죠.
문제의 '나는 가수다'를 보고 있는데, 저는 정말 그 프로에 홈빡 빠져 있었습니다.
근데, 아시죠?
진구가 그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가족들이 자기한테 관심 안 주고 TV 프로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걸 가만 보고 못 있죠.
아니나 다를까,
잘 참던 진구가 마지막 임재범이 노래 부를 때,
TV를 꺼버리더군요. 한번, 두번, 세번....
저는 뛰어가 진구를 밀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울더군요.
그때 아내가 그러더군요.
"그봐, 이젠 더 못보게 됐다니까"
그말 듣고 더 화가 난 아빠는 진구를 아예 몸통째 들고는 현관 밖으로 끌어내 버렸습니다.
혼비백산하는 아이를 보고,
아니 그것보다 같은 아파트 라인 사람들 무서워서,
다시 현관 안으로 내동댕이치다시피 했죠.
그리곤 윽박질렀습니다.
"이노무새끼, 조용히 안 하나"
그래도 소리를 줄이지 않자, 
저는 화장실로 가면서 그 앞 바구니를 집어들어 던지려고 했죠.
그랬더니, 소리가 줄어들어군요.
저는 임재범이고 나발이고 포기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푸덕푸덕 세수를 했습니다.
'미친 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요.
거울에서 '아파트의 개'가 지 얼굴을 씻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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