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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아파트 바로 아래층에서 불이 나면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 많으시죠.

종종 접하는 아파트화재 뉴스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으실 겁니다.

저는 관련 취재도 제법 하고, 기사도 많이 쓴 편입니다. 특히 아파트 18층에 사는 저는 아래층에서 불이 날을 때 어떻게 할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불이 나면 대개 엘리베이터는 이용할 수가 없다, 18층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1층으로 뛰어내려가기는 어렵다, 그런데 20층의 옥상 문은 평소에 잠겨있다, 저는 대략 이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고민끝에 관리소를 찾아가 소장에게 옥상 열쇠를 요구했습니다. 아파트 관리규정에 옥상 문은 잠궈놓도록 돼 있지만, 입주민들에게 열쇠를 복사해줄 수는 있다는 걸 알았던 거죠.

그래서 복사한 열쇠를 받아두었죠.

근데 그것도 한 2년쯤 지났더니 무감각해져서 지금은 열쇠가 어딨는지 잘 모르겠네요.

뒤지면 나오기야 하겠지만, 열쇠를 요구했을 때 맘이랑 지금 맘이 다른 거죠.

며칠 전, 그런 저를 환기시킨 사고가 창원에서 있었습니다.

전체 13층 아파트 10층에서 사람들 잠이 가장 깊은 새벽 4~5시에 불이 난 거죠.

현장취재를 해보니 10층 아래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었더군요. 하지만, 11층 이상 사람들은 구조될 때까지 최소 30분 이상 공포 속에서 방안에 갇혀 있었더군요. 

일단 읽어보시겠습니까.

 

 

아파트 불나면 위층 속수무책…대형 참사 우려

창원 비롯 각지서 화재 잇따라…사고현장 주민 "연기에 갇혀 죽을뻔했다"
2013년 01월 07일 (월)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연기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었어예. 이래 죽는갑다 싶었지예."

6일 오전 5시께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무방비한 고층아파트 화재대책에 경종이 됐다.

불은 전체 13층 아파트 중 10층에 사는 백모(여·58) 씨 집에서 발생했다. 새벽 2시 30분께 가스레인지에 곰국을 올려두고 백 씨가 잠든 사이 새벽 5시 전에 불이 났고, 출동한 소방관들이 5시 10분 이후 진화했다.

이 불로 같은 라인에 살던 주민들 대부분이 긴급 대피를 했고, 10층의 백 씨를 포함해 위층 주민 13명은 연기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 때문에 병원으로 옮겨졌다. 대부분이 간단한 치료 이후에 퇴원했지만, 화상을 입은 백 씨는 치료를 받고 있다. 백 씨의 아파트 내부도 대부분 탔고, 소방서 추산 2000만 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냈다.

 

6일 새벽 화재가 난 창원 고층아파트 현장. 거실이 시커멓게 그을렸다. /마산소방서

 

이 불로 가장 긴박한 위기를 겪은 사람들은 화재가 난 10층 이상의 주민들이었다. 13층까지 모두 6가구의 주민들은 연기로 인해 대피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30분 이상을 집안에 고립돼 있다가 소방관에 의해 구조됐다. 이곳 12층에 사는 주민은 "아침에 소란스러워 잠에서 깼더니 벌써 집안으로 연기가 스며들었다. 꼼짝할 수가 없었고, 거실에도 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죽는가 싶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일단 119신고부터 했다. 그리고 뒷산을 향하는 창문을 열고, 적신 수건으로 호흡을 하면서 방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30분 정도 됐나, 소방관이 뛰어들어와 우리를 확인하고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해서 안심을 했다"면서 "그리고는 5분 정도 지나서 소방관이 밖으로 대피하자면서 안내를 했다"고 말했다.

화재가 난 곳 아래층 주민들은 소방관들의 화재 진압 과정에서 미리 대피할 수 있었다. 이곳 8층의 주민은 "잠을 자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우리를 깨웠다. 나가봤더니 대피하라고 해서 가족들과 함께 대피했다. 매캐한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계단에 연기가 심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10층 발화점 아래 위의 연기 상황이 천지차이였던 셈이다. 고층건물의 화재 때 발화점보다 높은 층의 연기가 상승기류, 즉 '굴뚝현상'에 따라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는지 실제로 드러난 사례였다.

고층아파트 화재대피 요령에 대해 마산소방서 대응구조과 관계자는 "상황을 보고 연기가 심하면 대기해야 한다. 연기가 심한 상태에서 계단을 통해 1층이나 옥상으로 대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일단 소방관들이 출동하면 아파트 안내방송과 소방관들이 직접 확인작업을 거쳐 대피유도를 한다. 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지난 주말 전국에서 비슷한 성격의 고층아파트 화재가 빈발했다. 5일 오후 10시 30분께 경기도 파주시의 한 아파트 13층에서 불이 나 주민 20여 명이 한밤중에 대피했다. 또, 4일 오후 6시 55분께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주민 40명이 연기를 흡입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어떻습니까.

저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상상하는 수준과 실제 겪는 위기가 그만큼 큰 차이가 날 줄 몰랐습니다. 저는 불이 났다, 그러면 아래든 옥상이든 대피한다 정도로 간단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걸 알았죠. 집 바깥에 연기가 심하면 아예 탈출 자체를 못하는 겁니다.

...... 

그런데 이것도 문젭니다.

기사에서 소방관이 말한 것처럼 막연히 구조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나요? 기사를 읽은 독자께서도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구조를 기다리느냐, 탈출하느냐를 어떻게 판단하냐는 거죠.

그래서 저는 좀 더 취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베테랑 소방관을 만나 디테일하게 물어보는 거죠. 다음이 그 기사 내용입니다.

 

 

베테랑 소방관에게 듣는 아파트 화재대피 요령

불길·연기 약하면 '대피' 심하면 '대기'…화재초기 땐 1층이나 옥상으로
2013년 01월 08일 (화)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창원시 마산합포구 고층아파트 화재 보도 이후 독자의 문의가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고 연기가 나면 무리한 대피 보다는 소방관의 안내나 구조를 기다리라고 했는데, 어떻게 무작정 기다릴 수 있느냐"는 요지였다.

이와 관련해 마산소방서 대응구조과 관계자는 정확히 "연기가 심하면 대기해야 한다. 그 상태에서 계단을 통해 1층이나 옥상으로 대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소방관들의 안내나 구조작업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결국, 소방관이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 있느냐는 것이 독자의 문제 제기였다.

창원소방본부 마산소방서 대응조사1담당 송성룡 계장은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접근을 위해 아파트 단지 안팎의 소방로를 평소에 확보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와 함께 현재 고층아파트 화재 대피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 들어볼 겸해서 창원소방본부 측에 화재진압 및 구조활동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 소방관을 청했다. 그렇게 소개를 받은 분이 창원소방본부 마산소방서의 대응조사1담당 송성룡(56·창원시 상남동) 계장이었다.

1984년 12월에 소방관이 된 그는 현장 화재진압 및 구조 경력만 25년이 넘었다. 그에게 독자의 문제 제기부터 전했다. 답은 구체적이었다.

"집 바깥쪽의 연기가 극심하지 않아 자력 대피가 가능하면 1층이나 옥상으로 대피할 수 있다. 연기나 화재가 초기일 때는 연기가 계단 위쪽에 있기 때문에 사람이 바닥에 몸을 낮추면 대피가 가능하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입을 막고 엎드린 자세에서 대피하면 된다."

그렇다면 자력 대피 방향은 1층일까 옥상일까. 지난 6일 화재는 전체 13층 아파트 중에서 10층에서 발화했다. 이를 사례로 물었다.

"10층 이상에서 자력 대피가 가능하면 옥상으로 대피한다. 단 옥상이 열려있는 경우로 한정한다. 소방법에서는 옥상 개방을 규정하고 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옥상이 잠겨져 있는데 그쪽으로 대피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안전한 대피 방향은 1층이다."

독자들의 다른 문의도 있었다. 화재나 연기가 극심해 대피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방 안에 있는 것이 좋은지, 공기가 잘 통하는 베란다 쪽으로 나가는 것이 좋은지 였다. 베란다 쪽으로 피했다가 밑에서 확산돼온 불길이나 연기가 맞닥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송성룡 계장은 "베란다 쪽이 좋다"고 했다. "단, 아래 층 발화나 화재 확산 방향의 반대 쪽 베란다가 돼야 한다. 거실 쪽에서 불이나 거실 바깥 베란다로 불이 확산되는데 그쪽으로 피신해서는 안 된다. 그때는 반대 방향 베란다로 가고, 주방 쪽에서 불이나 연기가 올라오면 거실 쪽 베란다로 나가서 수건을 흔들어 구조요청을 해야 한다."

베란다를 통해 옆집으로 대피하는 건축법 상의 대피시설 규정과 활용도에 대해 그는 회의적이었다.

"그렇게 규정이 돼 있지만, 짐을 쌓아놓거나 옛날 아파트는 아예 벽을 두껍게 해 활용도가 거의 없다.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강조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가장 강조하는 아파트 화재 대피 핵심은 무엇일까.

"아파트 단지 안팎의 소방로를 평소에 확보하는 것이다. 무차별 주차를 해서 소방차가 아예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가자 큰 문제다. 이렇게 되면 대형 참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평소부터 각 아파트단지에서 강조하고, 반드시 훈련을 해두어야 한다."

확보해야 할 소방차 주차 노폭은 사다리차의 폭을 고려해 최소 4.7m다. 주차선 외 이중주차를 하면 이 폭은 확보되지 못한다. 아파트 주변 불법주차와 전선으로 인해 소방차가 접근하지 못해 일가족 4명이 사망한 사고가 2009년 6월 도계동 아파트 화재였다.

 

그렇죠.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답입니다. 자력으로 대피할 수 있다면 대피하라!

대피와 대기를 구분하는 기준도, 집안에 대기할 때의 요령도 설명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인터뷰는 그 교훈 외에 제게 두가지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하나는 송성룡 계장이 말한대로 불법주차와 전선문제로 소방차가 접근하지 못해 일가족 4명이 사망했던 2009년 창원 도계동 아파트화재사고였습니다.

또 하나는 소방관들마저 베란다를 통한 대피로나 옥상 대피로 확보 같은 법에 정한 대피 규정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일본의 2방향 대피로 확보 강제규정과 비교하면 차이가 큽니다.

글이 너무 기니까 다음 편으로 넘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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