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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아파트의 재난 1

 

 

 

 

화재 이후 창원소방서 소속 소방차에는 2개씩 간이매트가 설치됐다.

창원 아파트 화재, 그 후

2009년 6월 7일 아침, 주로 창원 마산의 매체들은 떠들썩했다. 담당 사회부와 카메라 기자들은 창원의 한 아파트 화재현장으로 일제히 몰렸다. 새벽 4시 15분경 진화된 이 화재로 일가족 4명이 모두 숨졌기 때문에 사고의 파장이 더욱 컸다.

이후 2~3일간 모든 매체의 뉴스들이 이 사고로 왜 4명이나 사망해야 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경찰 추정 발화 시간이 3시 55분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주방 천장과 거실 일부만 탄 채 단 20여분만에 진화된 화재치고는 사망자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베란다 쪽 안방 창문을 열고 5분 넘게 구원을 요청하다가 끝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숨진 부인의 죽음을 두고는 소방관의 구호 활동에 비난이 빗발쳤다. 밑에서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매트리스를 까는 등의 기본적 구호활동을 왜 하지 않았는가가 주된 지적이었다.

초기엔 사다리차가 왜 현장에 근접하지 못했는지, 현장목격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언론 보도도 잇따랐다. 현장 주변에 4~5대의 소방차에 막혀 인명 구조를 위해 당장 급했던 사다리차가 오히려 접근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지적을 받자 창원소방서는 언론의 취재 하에, 사다리차의 현장접근 실험을 하기도 했다. 결국 현장 주변에 얽히고설킨 전기선으로 인해 사다리차의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후 이 지적은 잠잠해졌다.

대개의 사건 사고가 그렇듯, 이 사고도 발생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언론 보도가 뜸해졌다. 자연스레 세간의 관심거리에서도 멀어졌다. 문제는 소방관의 미흡했던 구호활동, 특히 매트리스를 구비하지도, 설치하지도 못했던 점에 모아진 채. 그러나 그렇게 마무리될 일이었을까. 미궁에 빠진 문제는 없었을까. 보다 현명하고 분명하게 밝혀졌어야 할 원인과 과제는 없었을까. 특히, 나는 아파트 주거구조의 문제가 지닌 화재 대비의 취약성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차일피일. 기어코 이를 실천한 것은 2009년이 거의 끝나가는 12월 24일 오후 1시경이었다. 사고가 났던 아파트 앞에 섰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은 담담해졌다. 다시 6월 7일 새벽 사고 당시의 집안 그림을 보자. 소방관들이 문을 따고 들어갔던 04시 15분경에 현관의 안쪽 입구에서 남편이 질식사한 채 발견됐다. 안타깝게도 바로 직전에 부인은 안방의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다. 고 1인 아들과 중 2의 딸은 각각 자신의 방에서 역시 질식사한 채 발견됐다. 발화 지점은 부엌 쪽의 거실. 밥솥 등이 올려진 여러 단의 이동선반의 전기누전으로 불이 났다는 것이 사고 직후 창원소방서 정호근 대응구조과장 등 6명의 현장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내린 결론이었다. 주방 천장이 주로 소실됐고, 다단 선반 옆 기둥에 묶어놓은 멀티탭 전기배선에서 단락흔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전기배선에서 전기적 요인으로 발화했다는 조사개요가 나왔다. 나중에 만난 정호근 과장은 “아파트가 오래 됐고, 천장이 예전에 많이 썼던 짙은 색 합판재료로 돼 있어서 유독가스가 더 심했던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굳게 잠겨있는 문, 거기다 새롭게 단장을 하면서 당시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점 등은 당시의 화인과 사인을 더 깊이 분석하지 못하게 했다.

이어 만난 아파트 주민 몇 분과 차례로 찾아간 창원서부경찰서, 창원소방서 담당자들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극명하게 갈렸다. 그러다보니 어느 한쪽을 완전히 믿을 수도, 불신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내가 오늘 초점으로 잡으려 하는 아파트의 화재대비 취약성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일 것 같다. 먼저 같은 아파트에 사는 60대의 여성 주민 A씨. 부드러운 외양이었지만, 이야기가 진전되자 곧장 “개자석들!”이라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사고당일, 제사로 인해 집을 비우면서 현장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웃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당시 소방관들에게 분이 끓는 듯했다. “(부인이)그렇게 창문에 매달려 소리치는 대도 매트 하나 안 깔아주고... 아무리 입구에 차가 (주차를 해) 있어도 옆으로 소방차 대놓고 사다리를 쪼옥 올맀으먼 안 살았나!” 당시의 언론 보도도 부인이 구원을 요청하고, 급기야 건물에서 뛰어내려 숨진 과정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결국, 당시 주민들의 증언이나 이후 언론의 보도는 사지에 몰린 부인의 처지에 대해 소방관들의 신속한 구호활동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또 매트와 같은 구호장비가 없었다는 점으로 압축됐다.

그러나 사고수사를 맡은 서부경찰서 수사계의 총괄팀장은 주민과 언론의 이런 지적에 거의 빈정거림 수준으로 공감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진화와 구호과정에 참여했던 창원소방서 대응구조과 정호근 과장은 아파트주변 주차 차량 문제에 근본적 책임을 돌렸다.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근본적으로 주차차량이 지금처럼 도로에서 전부 다 집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안 그러면 소방차가 접근할 수가 없어요. 물론, 출동했을 때 화재현장 주변 차량을 견인할 수 있다고는 법에 돼 있어요. 그렇지만, 소방서에 견인차가 없는 상태에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어떻게 차량을 하나하나 견인하겠어요. 서울에는 견인차가 몇 대 있다는데, 효과가 검증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에게 사고 이후 매트리스가 보강됐는지를 물었다. “예. 소방차량마다 거의 매트를 장착하고 다녀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좁은 매트를 몇 개 붙여서 깐다고 해도 어떻게 여기에 뛰어내리라고 하겠어요? 그러다 사람이 다치면 누가 책임져요? 그런 점에서 더 안전한 게 4m 6m 짜리 구조망인데 그 사고 이후에 2개 더 보강했어요. 하지만, 위험하긴 마찬가지죠.”

아픈 경험은 대책을 보강시킬 수밖에 없다. 이 씨의 죽음과 주민들의 절규는 결국 소방차에 매트를 달고 다니게 했다. 또, 정호근 과장은 스스로의 진단을 통해 건물주변 주차문제의 근본적 해결책과 함께 화재진화에 앞선 직접 견인이라는 단기적 처방도 에둘러 제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파트 주거의 근본환경이다. 주민과 언론의 관심이 건물에서 뛰어내린 부인에게 집중돼 있을 때, 그 짧은 화재진행 시각에 나머지 가족 3명은 질식해 숨졌다. 화염을 더욱 거세게, 가스를 더욱 독하게 만드는 아파트의 내장재료들 문제는 이번에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바로 위층에 옥상을 두고서도 피란통로를 확보하지 못한 문제도 크다. 내가 현장을 찾았던 그날, 옥상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