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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아파트 - 내 집이란 게 과연 뭐지?


사람들은 흔히 ‘내 집 마련’ ‘내 집 마련’ 한다.
‘내 집’ ‘내 집’ 하는 사람들이 과연 '내 집'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한때, 이왕이면 내가 생각 하는 내 집의 조건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특히, 요즘 보편적인 '아파트'라는 주거조건과 결부해서.

우선 든 생각이 ‘내 아이들의 성장 환경에 맞는가, 그렇지 않은가’였다. 이건 말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육체적 정신적 양면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주거공간이 미치는 아이들의 육체적 환경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이 질병문제다. 새집증후군의 가장 흔한 사례인 아토피, 비염 등이 그 예가 된다.
태생 때부터 창원 팔룡동의 벽산아파트에서 2년, 마산 구암동의 대동아파트에서 4년을 살았던 나의 첫 아들 호정이는 아토피나 비염 모두 심각하게 앓았다. 엄마가 거의 1~2년간 하루 한시간씩 아토피 치료약을 몸에 바르고 그것을 묶고 다시 풀고 몸을 씻어주는 행위를 반복할 정도였다. 비염으로 병원을 찾은 횟수는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병원에 다닌 횟수를 능가하지 않을까. 그 원인 대부분이 아파트 내부가 뿜어내는 건축자재의 독성으로 인한 것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주택, 특히 아파트가 미치는 육체적 영향 요소야 무한하겠지만, 여기선 이쯤 해두자.

주거공간의 ‘정신적 영향’ 하면 내 아내의 경우, 듣기를 당장 외면한다. “무슨 택도 없는 추상적인 이야기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장한다. ‘접지성’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까지 말이다. 글자 그대로 ‘지면에 발을 닿는 경우’를 말하는데, 그만큼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땅을 밟으면서 뛰어놀 확률이 단독주택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호정이의 경우를 예로 든다. 호정이는 이러 저러한 이유로 혼자서 집 밖에 나가기를 싫어했다. 그 단적인 이유가 엘리베이터 소리가 듣기 무섭다는 것이었다. ‘우웅’하면서 다소 컸던 그 소리 때문에 새벽에 잠이 깰 정도였다. 결국 혼자 나가기가 무섭다는 이유였고, 그 때문에 호정이에게 ‘친구’라는 개념이 머리에 자리 잡힌 게 불과 1~2년 전 아니었나 싶다.

요즘 호정이 호준이는 엄마 아빠가 “아파트에선 뛰어다니지 말고 발바닥을 들고 다니라”고 하면 발뒤꿈치를 드는 게 아니고 발가락쪽을 든다. 그래서 발뒤꿈치쪽에 무게가 가 오히려 ‘콩 콩’하는 소리가 더 클 정도다. 참으로, 벗어나고 싶지만 당장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이고, 아이들에겐 연방 꾸중을 하는 내가 속으로는 너무 미안한 현실이다.

아, 마침 아이들의 성장환경과 아파트 주거구조에 관한 연구자료가 있다. 몇 년전 내가 취재했던 자료였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2007년 10월 경남도민일보 게재 기사

 

"20년 이상 끊임없이 아파트문화에 간섭해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박철수 교수를 지난 10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아파트와 질병 관계를 다룬 역대의 논문을 취재하는 이 자리에는 부산 동의대 건축공학과 신병윤 강의전담 교수가 동행했다.

박 교수는 주거와 질병관계를 다루는 논문은 반드시 일정한 기간을 두고 특정한 대상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는 요건을 먼저 밝혔다. 그리고 언급된 논문은 건국대학교 주거학과 강순주 교수와 심순희 연구원의 '초고층 아파트 거주자의 주거환경 스트레스와 건강'이라는 논문으로 1996년 1월 대한건축학회 논문집에 실렸다.

 

2007년 현재와 간격이 큰 점에 대해 박철수 교수는 "고층이나 초고층아파트 건축이 대세가 돼버린 2000년 이후 학계나 전문기관의 비판적 연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배경을 밝혔다. 아파트 주거문화에 비판적으로 접근한 드문 논문으로 소개됐다.

 

◇고층일수록 주거환경 스트레스 높아

 

강순주 교수팀은 서울시에 있는 초고층 아파트 중에서 입주 후 1년이 지난 주부들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시기는 1994년 3~4월이었다. 전업주부가 91.7%로 거주층은 16층 이상(초고층)이 31.2%, 10~15층(고층)이 27.7, 5~9층(중층)이 22.3, 4층 이하(저층)가 18.8%의 분포였다. 우선 평균 주거환경 스트레스 값을 3.0으로 봤을 때, 16층이상의 경우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3.35였다. 구체적으로 층간 소음과 하수파이프 소음, 창문 소음 등이 내용이었다. 승강기 사고에 대한 불안감은 3.74로 스트레스 항목 중 가장 높았다. 승강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거나 내부 범죄발생 우려 등도 포함됐다. 또 재해 시 피난경로 불안이 3.48로 나타났다. 반면 주택구조 및 시설로 인한 스트레스평균은 2.96으로 낮았다. 수납공간의 부족 항목도 3.53으로 높았다. 행동제약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2.89로 낮았지만 노인과 어린이의 생활불편이 3.45로 높았다. 특히 높은 곳에 거주하면서 느끼는 불안은 2.14로 가장 낮았다. 심리적 압박감이나 고립감 등이 낮다는 것이다.

 

다음은 주거특성에 따른 주거환경 스트레스 결과. 연령이 낮을수록, 거주층이 높을수록, 알고 지내는 이웃이 적을수록 스트레스는 높았다. 핵심인 건강상태 분야에서는 전반적 건강상태가 1.36이었다. 이에 비해 16층 이상 거주자의 경우 감기에 잘 거리고(1.73), 기관지 및 두통(각각 1.44), 근육통(1.41)을 상대적으로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심리적 거주성과 승강기 등의 사고 우려, 주택구조 및 시설과 소음 등의 요인이 거주자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파악됐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인은 주거환경 스트레스와 연령 등이었다.

 

◇유아에게 더욱 나쁜 영향

 

강순주, 심순희 두 연구자는 2000년 2월 대한건축학회논문집에 '초고층 및 저층 아파트의 주거환경이 유아에게 미치는 영향' 논문을 냈다. 아파트 거주층에 따르는 유아의 놀이행태를 분석한 것이다. 연구의 이론적 배경이 흥미롭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는 45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의 건설이 이루어졌으나 고층, 고밀주거에 대한 행동학적, 사회병리학적 측면의 문제가 62년 제이콥스에 의해 제기되면서 저층 고밀주거로 주택정책이 전환됐다.' '유아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자신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형성하기 어렵다. 초고층 아파트는 많은 유아와 아동들에게 신경질, 피로감, 자연에 대한 무감각, 성급함, 감정의 빈곤, 공격성, 우울증 등과 같은 환경적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 70년대 Piperek와 Wien에 의해 입증됐다.' '초고층이라는 물리적 조건에 따른 모자의 외출 제한과 그에 동반되는 모자의 밀착과잉은 유아의 자립도 저하를 가져온다.(織田正昭, 1991) 아동의 실내거주 시간 증가는 기초체력과 폐기능의 저하를 유발하여 호흡기질환과 알레르기 증상의 발생비율을 높인다.(逢板文夫, 1992)'

연구는 분당 초림동 Y마을 내 저층·고층·초고층 혼재 단지에 거주하는 만 3~6세 이하 유아의 어머니 359명을 대상으로 99년 1~2월에 설문조사 형식으로 진행됐다. 주거특성은 초고층 69.4%, 고층 이하 30.6%였다. 우선 유아 단독으로 외출 가능한 정도를 알아봤다. 5층 이하의 지수가 13.28이었고, 6~10층 11.24, 11~15층 11.46, 16층 이상 7.66 지수로 층수별 차이가 현격했다. 다음은 1일 실외 놀이비율. 저층 35.7, 중층 26.33, 고층 28.75, 초고층 25.66 등으로 역시 상관관계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연구자들은 고층 주택의 경우, 공동테라스나 옥외 공간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리고 유아의 집단놀이 정도가 추가됐다. 역시 같은 순의 차이가 나타났다. 이는 어머니가 유아의 일상생활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문제점 설문에서도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