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습작 - 코고는 사람과 자는 법


 새벽 3시 정도 됐을까.

희한한 꿈으로 잠은 깨버렸고, 전날 저녁 잠시 잠잠했던 두통이 다시 살아나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옆에 누운 주병이의 코고는 소리는 두 시간 전 잠이 들 때보다 몇 배는 커져 아예 천정을 울릴 정도다.

베개가 없어 대신 밴 딱딱한 배낭 때문에 제대로 누워있을 수도 없다.

두통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만큼 점점 더 육중해져 이제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됐다.

암담했다.


그렇게 밀양시 교동 밀양강변의 맑은물소리 펜션의 절망감이 칠흙의 어둠처럼 깊어졌다.

할 수 없이 나는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갔다. 오싹할 정도로 시원한 새벽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차가운 새벽공기처럼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명상’

베란다문 한쪽을 방충만만 남기고 그 안쪽에서 좌선을 시작했다.

‘그래, 오늘밤은 잠 안 자도 된다. 한번 앉아서 버텨보자.’
그때 생각은 그랬다.

벌써 거실 안에 스며든 한기 때문에 주병이의 다리가 오그라졌다. 미안했지만, 내 머리의 통증이 앞서니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코고는 소리도 조금은 톤을 낮췄다.

본래 코고는 사람 옆에서 잘 때는 자주 자세를 바꿔주고, 옆으로 눕게 하고, 찬 공기를 마시게 한다지 않은가.


좌선해 명상을 할 때 ‘무념무상’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다.

굳이 머릿속 생각을 비우지 말라는 뜻이다. 무념무상은 명상의 도가 더해져 이르는 자연스런 결과다.

만약 눈을 감았다면, 감은 눈을 상상하고, 그 눈으로 코끝을 그려보라고도 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듯 생각을 흐르게 한다.

이어 내 머리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었던 이틀 전의 막걸리와 소주 생각이 나고, 방금 내 잠을 깨웠던 악몽 같은 한 장면도 감은 눈앞에 펼쳐졌다. 어느새 곁의 코고는 소리는 들렸다 말았다 했다.

점점 압박감이 심해지는 회사 속 일상도 머릿속에 흘렀고, 사람들 소리를 듣는 내 모습보다는 말하는 모습이 더 많아진 것도 새삼 깨닫는다.

명상의 횟수가 더해지면서 요즘은 그 전보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도 점점 더 길어졌다.

생각을 모으고, 생각을 흐르게 하고, 생각을 비우는 명상의 자세가 어디 좌선에만 그칠까. 걸으면서 그렇게 하면 행선이요, 누워서 그러면 와선이라 했다.


두 시간 쯤 그러고 있으니 두통이 훨씬 약해졌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안감이 사라졌다. 옆에 코고는 소리도 별로 신경이 안 쓰인다. 딱딱한 배낭이지만 다시 배고, 바른 자세로 누웠다. 잠이 올 것 같진 않았지만 ‘와선이 별 건가’ 싶어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아, 그때 머릿속에 새겨진 생각!

그것은 오늘 새벽 3시간을 넘긴 내 명상의 결론이었다.

‘아, 지금 나에게 푹신한 베개 하나가 있었으면....’

염원이 전달된 걸까.

그때 시각이 아침 7시경, 안방에 자던 연갑이가 뿌석한 얼굴로 나왔다.

“연갑아, 다 잔기가?”

“그래. 같이 나갈래?”

“아니, 니 베개 좀 쓸라꼬^^”


8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