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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지방자치 실전상식 - 중앙-지방 근본 모순 관계인가

중앙-지방 갈등 근본 모순인가?

 

지난 번 글 지역민의 지방현실 인식 실태에 대해 이런 페북 댓글이 달렸다.

한국사회의 근본 모순이 중앙과 지방의 모순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차치하고라도 지방자치가 실현되지 않는 근본 모순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싸우지 않는다? 그것도 답이긴 한데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이 한 개가 풀리면 다 풀리듯 얽힌 뭔가가 있을 것인데 그걸 찾아야 될 것 같은데요.”

 

근본 모순!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글을 주신 분은 진주에서 소셜미디어마케팅 교육·컨설팅 업체 ‘N미디어를 운영하는 김진석 대표였다. 나는 이렇게 답을 드렸다.

저는 중앙과 지방 갈등이 근본 모순이라고 단정하진 못합니다. 다만 이 세상의 근본 모순이 결국 돈과 권력의 집중문제라고 봤을 때,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참고로 위 블로그 글에 언급된 동아대 지방자치법 전공 최우용 교수는 전공이 그래선지 빈부 격차, 분단 갈등, 지방의 종속을 한국사회 근본 모순으로 보더군요.”

 

김진석 대표의 댓글은 이렇게 이어졌다.

지역민들의 지방현실 인식의 수준이 그것이라면 열심히 지역민들이 공부를 해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싸울 전사를 길러야 할 것이고 그런 것 아닌가요? 그 전사는 지역민들에게 도덕적 권위가 있고 실력(지식)이 있고 또한 지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중앙과 싸울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대개 중앙에 소외됨으로써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저처럼 대개가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대놓고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100% 공감하면서 이렇게 답을 드렸다.

결국 중앙에 집중된 돈과 권력을 뺏어 와야 할 처지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앞서서 싸우는 전사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당장 화염병 던지고 감옥 간다고 문제 해결이 되진 않겠죠. 확전은 될지라도. 일상의 정치, 생활 속의 자치, 그래서 지방자치가 현재의 단체자치 수준을 넘어 주민자치로 확대되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고, 주민의식도 키우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문답의 의미는 뭘까?

요지를 한 번 더 압축하면 중앙-지방 갈등이 근본 모순이냐 아니냐,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모순의 강도와 함께 그 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투쟁이냐, 대화냐 까지 함축하고 있다.

일단 길을 우회하자.

실로 오랜만에 다시 확인한 결과, ‘근본 모순이라는 단어는 칼 마르크스가 주창했다.

모든 변화는 모순에서 출발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모순이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모순이다. 변화는 계급투쟁을 통해 이루어진다.”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모순을 언급한 1867년 판 자본론.

 

 

그 다음, 중앙-지방 갈등이 근본 모순이냐는 물음에는 이 문제가 한국사회 모순의 근본에 해당하느냐’, ‘언제나 대립하고 싸우고 급기야 어느 한 쪽이 없어져야 해결되느냐하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결국 완전한 지방자치는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냐, 중앙정부의 정책 결정과 중앙-지방 협의를 통해 실현 가능한 것이냐 하는 문제다.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근접할 수는 있다. 우선, 중앙과 지방의 갈등, 지방의 종속을 빈부 격차, 분단 갈등과 함께 한국사회 근본 모순이라고 주장한 최우용 교수의 주장부터 들어보자.

그는 지난 627일 자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지방분권, 독립운동처럼 해야기사의 서면 인터뷰 원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필자는 분권운동은 독립운동 하듯이라는 슬로건을 제안하고 싶다. 일제 치하에서의 독립운동과 지방분권운동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유사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일제 치하에서의 독립운동이 그러했듯, 분권운동 역시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는 고독하고 힘든 싸움이 될 수 있다.

둘째, 분권운동의 우군 역시 극히 일부라는 점이다. 중앙의 권력도, 국가의 기존 기득권(국회, 중앙관료조직, 중앙언론 등) 그 어느 하나도 지방분권을 원하지 않는다. 여기에 지방분권을 잘 몰라서 또는 지방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지방분권을 싫어하는 이들이 지역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은 분권운동의 어려움을 웅변해 주고 있다. 분권운동은 이들과 소통하고 협의하고 때로는 싸워나가야 한다. 분권운동의 동력을 최고로 올리기 위해서는 분권운동을 뒷받침 해줄 지역 내의 화합과 결속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독립운동이 그러했듯, 지방분권은 언젠가는 이루어야 하는 그리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시대적 정의라는 점이다. 우리가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패망이라는 국제적 환경의 변화와 독립을 향한 국민들의 열망과 독립운동 투사들의 고군분투 때문이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많은 선각자들이 죽어갔다. 그러나 다행히도, 분권운동을 하면서는 죽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죽을 각오로분권운동을 하지 않으면 지방분권은 우리 생애에 요원할지도 모른다. 힘내자! 세계사적으로 시대를 바꾸고, 역사를 바꾼 것은, 중앙의 권력과 기득권이 아니었다. 세계 4대 문명도, 로마의 시작도, 현대 일본을 있게 한 메이지 유신도, 모두 변방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말자!”

 

최우용 교수의 요지는 둘째 근거 중 중앙의 권력도, 국가의 기존 기득권(국회, 중앙관료조직, 중앙언론 등) 그 어느 하나도 지방분권을 원하지 않는다. 여기에 지방분권을 잘 몰라서 또는 지방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지방분권을 싫어하는 이들이 지역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은 분권운동의 어려움을 웅변해 주고 있다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분권운동은 이들과 소통하고 협의하고 때로는 싸워나가야 한다고 결론 짓는다.

 

 

              투쟁이냐 대화냐, 모든 갈등 현장에 주어지는 질문이다. 1989년 마산수출자유지역 후문앞 노동자들의

              투석전/경남도민일보 DB

 

 

 

여기에 더할만한 자료가 있다.

<위장된 지방자치>의 저자로 25년 간 인천시의회 전문위원을 지낸 한국지방정부연구원 김회창 대표의 주장이다.

“20년 동안 중앙정치권과 대형언론들은 왜 지방자치의 진화에 대해 거부해왔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고 선명하다. 권력의 독점을 통해 그들만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공간에서 시민들이 제대로 주인 노릇 하기 위해서는,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방정부를 시민들이 탈환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노무현 정부까지는 시민의 그릇(지방자치법을 비롯한 시민주권관계법 등 다양한 제도의 개선 및 보완) 만들기에 애를 썼었다. 하지만 그 뒤부터 자치의 실현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논의마저 사라졌거나 식어버렸다. 왜일까? 한마디로 대한민국에는 (지방에 돈과 권력을 분배하지 않으려는) 탐욕의 정치가 기승을 부린 결과다.”

지방자치가 뭐냐? 라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권력배분의 시작이라고 말해야 지방자치 할 자격이 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 자치는 그저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자치의 실현 여부가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인사가 아직도 많다. 이는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글로벌 환경에서 지방정부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근시안의 결과이거니와, ‘적어도 자신은 기득권에 속해있어 지금이 좋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요구 가운데 하나일 뿐 다른 이유가 없다.

 

2017년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