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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사진가의 여행법


 

사진가의 여행법/진동선, 북스코프


그리하여 여행 내내 강조한 것이 바로 ‘물리적, 정신적 LCDF’에 대한 사유와 적용이다. 사진의 이론과 실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물리적, 정신적 LCDF이다.

물리적 LCDF에서 L은 ‘빛(Light)’이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빛이고 또 그림자이다. 이것들은 한 몸이다. 빛이 감싼 어둠이고, 어둠이 감싼 빛이다. 사진은 빛으로 시작해서 빛으로 끝이 나고, 어둠으로부터 생성되어 어둠으로부터 소멸한다. 빛과 그림자를 제대로 볼 수 있을 때 세상의 위치 및 관계, 조화, 균형을 파악할 수 있다.

C는 ‘색(Color)’이다. 사진에서 빛이 형상을 만드는 형태의 근간이라면, 색은 빛을 통해 본질에 다가서게 하는 이성과 감정의 그물망이다. 사진에서 색이 중요하고 색을 제대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결국 색을 통해 내용에 다가서고 색을 통해 감정의 울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화려한 컬러만 색이 아니라 검은색, 흰색도 색이다. 사진은 색을 통해 피어난다.

D는 ‘조형(Design)’이다. 빛과 그림자 그리고 색이 하나의 메시지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구성이 필요하다. 이 구성의 철학을 조형이라고 한다. 조형의 핵심은 세상의 아름다움과 질서와 조화로움을 결정하는 디자인의 힘이다. 사진에서 구도는 바로 이 구성의 하부 요소이며, 구성의 더 큰 의미망은 바로 디자인이다. 사진은 제대로 된 디자인 앞에서 비로소 위력을 발휘한다.

F는 ‘Frame’이다. 사진은 결국 프레임으로 말하고 말해진다. 좋은 사진, 훌륭한 작품은 프레임을 결정짓는 능력과 자질로 판가름 난다. 빛, 색, 조형 그 모두는 종국에 가서 한 장, 한 컷, 한 scene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완성된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프레임이다.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

또, 사진에는 정신적 LCDF도 있다. 물리적 LCDF가 촬영을 할 때 명심해야 할 요소들이라면, 정신적 LCDF는 철학적, 사유적, 개념적 측면에서의 사진 이론이다.

우선 ‘L’은 ‘바라봄(looking)’이다. 이때의 바라봄은 그냥 눈으로 바라보는 seeing과는 다르다. 사유가 있는 바라봄이자 작은 것까지, 볼 수 없는 것까지, 말해질 수 없는 것까지 볼 수 있는 인식의 바라봄이다. “볼 수 있을 때 겨우 보일까 말까 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사진은 그렇게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보이고, 볼 수 있을 때 찍을 수 있다.

C는 ‘선택(Choice)’이다. 사진은 어떤 경우든 선택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선택 행위이고 선택을 통해서 메시지가 드러난다. 따라서 사진의 선택은 보았던 것들, 보인 것들, 보여진 것들이 사진을 통해 표현되는 ‘메시지의 장’이다. 좋은 사진은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는데 주제와 소재, 그리고 대상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택한 결과물이다.

D는 ‘연출(Directing)’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출은 흔히 말하는 나쁜 의미로서의 왜곡이나 조작이 아니다. 사진가가 주제, 소재, 대상 앞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예견하고 구성하고 이미지를 서사화하는, 영화의 연출과 같은 고차원 행위이다. 현대사진이 연출 능력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찍는 것은 넘어서 사진의 모든 것을 기획하고 작품화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연출력이다.

F는 ‘Frame’이다. 물리적 프레임처럼 정신적 프레임도 한 장, 한 컷, 한 신으로 나타나는 사진만의 프레임이다. 그러나 물리적 프레임과 달리 정신적 프레임은 눈과 마음으로 미리 지각한 정신과 인식의 장면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렌즈는 눈의 연장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때의 눈이 바로 정신적 프레임이다. 세상의 모든 사진은 결국 눈과 마음의 프레임이 카메라 렌즈의 프레임을 빌려 표현된 것이라고 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