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구야,
요즘 니가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내가 알아서 하께. 이거야. 그냥 좀 놔둬. 이러기도 하지.
그 말을 들으면 아빤 무안하기도 하지만, 오늘 가만 생각하니 뭐 기분 나쁜 이야기도 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니가 스스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그건 철
학을 하기 시작한 거라고 말이야.
나는 철학을 어렵게 생각했어. 플라톤, 소크라테스, 칸트, 니이체…. 계몽주의, 실존주의, 더 이상
생각도 안 난다. 어쨌든 철학자들 이름이나 인식하지 못하는 주의를 연상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너의 말을 들으면서 철학이란 게 내 근처로 바짝 다가왔어. 책 속의 이론을 넘어서서 말이
야.
니가 왜? 왜? 왜? 라고 묻기 시작했거든.
왜 그래야 되는데? 왜 공부해야 되는데? 왜 대학에 가야 되는데?
그래 철학이 뭐 별거겠어? 이유를 묻고 이유를 알고 판단하게 되는 과정 아니겠어?
아빠는 대학에서 사회변혁운동 서적을 읽기 시작하면서 철학을 접했지.
거기서는 철학을 세계와 사람, 사물, 현상을 읽는 눈이라고 했어. 그런데 이 말보다 더 쉬운 게 니
가 말하는 왜? 왜? 왜? 인 것 같거든.
나나 엄마나 니 주변에서는 누구나 이게 맞다면서 권하고, 강제하지. 니가 판단할 일, 니가 할 행
동까지 말이야.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 니가 이유를 묻고 의심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게 철학이지 뭐겠어.
얼마 전에 아빠가 술에 취해 우리집 거실 벽에다 이렇게 썼어.
‘득구야, 하나만 생각해보자. 지금 영어 수학 과외 그대로 할래? 아니면 하나만 바꾸자. 철학으로.
철학이 뭔지 아나? 니가 뭘 원하는지, 그걸 안내해주게 철학이라고 생각해. - 2017.1.15.’
그런데 득구야,
아빠가 철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게 언젠 줄 아나?
50살이 넘어서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야 철학이니 뭐니 떠들어 쌓는 거다.
계기가 있었다. 50 넘어 어느 순간, 지난 인생의 곳곳에 서 있는 아빠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
어.
중3 고1 때 2년간 깊이 빠져들었던 침묵의 시간 속의 나, 대학입시 3수 기간 성적이 나아지지 않
는데도 의식하지 못했던 나, 스물여섯 늦은 나이의 학생운동 입문과 고민 결단 그리고 경찰서 탈
출 교도소 수감의 과정, 그 과정에서 외롭고 때론 충동적이었던 나….
그때 나는 오늘의 너처럼 왜? 왜? 왜? 라고 물었을까?
물론 물었겠지. 아빠도 신중한 편이었고, 한 순간 한 순간 인생의 갈림길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철학은 왜? 냐고 묻는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야.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 집중해야 한다는 거야. 마치 니가 게임할 때나 친구들 만날 때, 시
험 칠 때 급속도로 머리를 회전시키듯 말이야.
그 다음엔 혼자만의 판단이 아닌 너를 아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리고 그 과
정을 더욱 충실하게 해주는 게 평소의 독서와 독서한 부분에 대한 고민이겠지.
아빠가 과거의 나를 만날 때 조금은 안스러운 부분이 이거야.
이렇게 아빠가 글을 쓰고 있을 즈음, 마침 니가 이런 말을 했어.
됐어 내가 알아서 하께. 아빠가 상처로 깊게 팬 니 오른쪽 엄지발가락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다음
날 공을 찬다고 해서 그럼 축구화를 빌려라, 밴드 감고 붕대를 감아라 등등.
나는 그 이야기를 한 5분 떠들었는데, 너는 가만히 있다가 단 한마디로 결론을 내렸지. 됐어 내가
알아서 하께. 그냥 찰 거야.
이거 뭐지? 이게 철학인가?
어때 같이 한번 생각해보자, 득구야!
2017.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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