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0일.
난 2학년이 됐고 세상은 더 살기 힘들어졌다.
여전히 아침 8시에 일어나야 하고 억지로 씻고 옷 입고 먹기 싫은 밥을 먹어야 한다.
처음엔 좋은 소리로 구슬리던 아빠가 곧 화를 내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도 그대로다.
아니 그대로가 아니다. 1학년 땐 다니지 않던 영어학원을 새로 다니게 됐다. 1학년 땐 하지 않았던
구구단 공부도 해야 한다.
숫자 외우기가 정말 싫은 나는 수업 끝나고 남는 일이 다반사지만, 여전히 구구단은 내 머릿속에 들
어오지 않는다.
2단 3단은 그런대로 왼다.
4 1은 4, 4 2 8, 4 3 1...12, 4 4...14? 15? 16? 4 5...4 5 20, 4 6 2...22? 23?
아, 정말 모르겠다.
정말 짜증난다.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어야 되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그러나 분명히 갈 수 있는 신나는 세상이 있는데...
어제 본 나니아연대기가 내 머릿속에 가득하다.
머나먼 우주의 끝, 거기서 새 세상이 펼쳐지리라.
내가 사는 이 네모 난 아파트의 어느 벽면, 내가 다니는 네모 난 학교의 어느 건물 구석에서 문이 열
리고,
나는 2000년 전 고대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
준아! 준아!
일어나, 8시 넘었어. 지금 안 일어나면 지각이야!
으... 듣기 싫은 목소리가 나를 현실 세계로 다시 꺼집어냈다.
네모난 안경, 네모난 턱...
아빠다.
세수해!
옷입어!
밥먹어!
내 몸과 달리 여전히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내 머리는 여전히 나니아의 세계에 있다.
...
요즘은 작년 1학년 때보다 지각하는 횟수가 더 많다.
작년에 그 무서웠던 선생님이랑 헤어지고 올해 만난 선생님은 그야말로 천사다. 몇 분 늦었다고 복
도로 나가라느니, 꿇어앉으라니 그러시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나니아 공상도 시간을 더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아빠는 그때나 지금이나 소리지른다.
뭐해 세수 안하고?
밥 빨리 안먹어?
빨리 안 갈거야? 지금 8시 30분이야, 지각이잖아?
아, 정말 네모 난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