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형아랑 숨바꼭질을 하면 숨을 데가 정말 없다.
기껏해야 장롱 속이나 안방 화장실이다.
득구 형아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숨어봐야 소용없다. 발견되면 그 속에서 뛰어나가야 ‘00’
을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이미 늦다.
장롱 속은 숨바꼭질 할 때 말고도 필요하다.
엄마 아빠가 엄청 화 낼만한 말썽을 부렸거나, 형아 먹을 걸 내가 먹어버렸을 때다. 형아 장
난감을 못 쓰게 만들었을 때도…
반대로 엄마 아빠가 내 말을 안 들어줄 때나, 형아가 나를 내버려두고 혼자 놀러갔을 때도
나는 그 속에 숨는다.
장롱 속에서 난 숨을 수도 있고, 울어도 되고, 막 욕을 해도 된다.
아파트 안에서는 정말이지 거기 밖에는 없다.
안방 화장실은 너무 크고 어두워서 무섭고, 부엌 쪽 베란다는 너무 춥다.
그런데 아파트가 아닌 주택인 친할머니집이나 외할머니집은 다르다. 숨바꼭질 할 때 숨을 데
도 많다.
우선 옥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계단으로 해서 친할머니집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면 숨을
곳 천지다. 작은 창고가 있고, 장독대 뒤에 숨어도 된다.
친할아버지는 옥상 위에 수십 가지의 나무 밭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 뒤에 숨어도 되고, 형아
가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아도 난 거기서 구경할 게 많다.
외할머니집은 지금은 1층이지만, 몇 년 전 같은 집 2층에 있을 때에는 계단으로 다락이 연결
됐다.
거기도 조용히 숨어 있으면 형아가 찾지 못했다.
득구 형아는 내가 아주 어릴 때 거기 계단에서 떨어져 눈 위를 깁기도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 집에는 뒷길도 있다. 가끔 고양이가 튀어나와서 무섭긴 하지만, 숨으면 정말 아무
도 모른다.
나는 숨으면 아무도 모르는 이런 장소들이 좋다.
게다가 아파트에서는 조금만 뛰어도 고함을 지르는 엄마 아빠도 할머니집에 가면 아무 말도
안 한다. 심지어 아빠는 뛰어놀라고도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집 옆에도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가 나를 땅콩집으로 데리고 갔다.
내가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 안쪽 동네에 똑같이 생긴 집 두 채가 마치 하나처럼 붙어 있었
다. 그래서 땅콩집이라고 했다.
아직 집은 완성되지 않았다. 공사 중이었다.
하지만 그 집에 들어선 순간 난 놀랐다.
마당이 정말 넓었다.
나무, 모래, 자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지만 아파트에는 없는 마당이 나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실례합니다. 신문을 보고 왔는데요. 공사 중이지만 내부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아빠가 마당에서 나무를 깎던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아, 이쪽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니까 저쪽 집을 보시죠.”
그러면서 바로 옆 땅콩집의 한 쪽을 가리켰다.
아직까진 특별히 경계도 없어서 그냥 그쪽으로 갔다.
마침내 그 집 안으로 들어섰다.
“우와, 계단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계단을 너무 좋아한다. 아파트엔 없기도 하고, 가끔 보게 되는 계단이 난 너무 반갑다.
그래서 펜션에 놀러갈 때에도 계단 있는 방을 잡자고 조른다.
큰방 작은방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있는 아빠를 내버려두고 난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놀랍게도 2층에서 3층 올라가는 계단이 또 있었다.
“아빠, 여기 또 계단이 있어!”
“그래, 조심해서 올라가 봐”
나는 대답할 생각도 않고 후다닥 올라갔다.
그런데 거기엔 작은 방이 있었다.
정말 귀여운 방이었다.
천장이 아주 낮았다. 천장에 내 머리가 닿을 정도였다.
창문도 아주 작았다. 밖이 겨우 보였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어느새 올라온 아빠가 물었다.
“응. 3층도 아니고, 방은 너무 작은데 뭐지?”
“전에 외할머니집 2층에 있을 때 올라가 봤잖아?”
“음…아 그거, 혹시 다락이야?”
“그래. 바로 그거야!”
“이거, 다락 치고는 너무 큰 거 아냐?”
“다락 맞아.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지.”
외할머니집 다락은 이렇게 크지 않았다. 이것저것 짐도 많고, 사람 하나 누우면 꽉 찼는데…
어쨌든 여기는 신기한 것 천지다.
아파트에는 없는 마당에 계단에, 넓은 다락까지.
“아빠! 우리 땅콩집으로 이사 오면 안 돼? 이렇게 가까운데…”
“그럼 여기 이사 올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새로 지으면 안 돼?”
“야, 집 짓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아빠, 짓자~ 응?”
“야, 그러지 말고 다른 곳도 구경해야지. 얼른 내려가자”
“싫어. 난 여기가 좋단 말야!”
“그래. 그럼 아빠는 밑으로 내려간다.”
칫, 정말…
집에 돌아오는 길.
땅콩집으로 이사 가자고 아빠에게 또 조르고 싶었지만,
아빠 표정 보고 포기했다.
그걸 알았던지 아빤 날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느낌이 왔다.
‘이건 아니다.’
작전을 바꿨다.
“아빠, 난 계단하고 다락이 정말 좋았어. 아빠는?”
그때야 아빠는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아빠도. 넓은 마당도 참 좋고…”
“그래. 나도”
…
“근데 아빠도 어릴 때 숨바꼭질 했어?”
“그럼”
“집에서도 했어?”
“응 가끔. 지금 진구 삼촌이랑 고모랑 셋이서.”
“집에서는 어디 숨었어?”
“음… 장롱 속에도 숨고, 다락에도 숨고 그랬지”
이때다 싶었다.
“아빠, 난 우리집에서 숨바꼭질해도 숨을 데가 없어. 그거 알아?”
“왜?”
“장롱 속하고 안방 화장실하고 베란다 밖에 없는데 거긴 다 형아가 안단 말야?”
“진구가 형아보다 빨리 뛰면 되지?”
“어떻게? 거기선 형아보다 빨리 나올 수 없단 말야!”
…
“아빠, 그러니까 땅콩집으로 이사 가자 응?”
…
“아니면 아파트 말고 그냥 집으로 이사 가든지 응?”
“그렇게 계단하고 다락이 좋아?”
“응! 응! 응! 숨바꼭질 안 할 때도 그게 좋아!”
“왜?”
“어떨 땐 그런 곳이 필요하거든”
“그런 곳이라니?”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말야”
“왜 그런 게 필요해? 무섭지 않아? 너 무서움도 많이 타잖아”
…
“왜 그런데? 이야기해봐”
“그냥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단 말야”
“뭐? 어떨 땐데?”
“형아가 나 놔두고 혼자 놀러갈 때”
“또?”
“엄마 아빠가 내 말 안 들어줄 때…”
…
난 내가 말썽 부렸을 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