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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10년 전 그 골목 - 창원 상남동

골목과 사람(13)10년만에 천지가 바뀐 창원 상남장

가축전·어물전·피복전…장터로 통했던 옛 상남동 골목들

창원 상남시장은 요즘 희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알다시피 시장은 3층 짜리 현대식 건물이다. 그런데 이 건물 2층 주변으로는 4일과 9일 5일장이 열린다. 건물의 난간을 절묘하게 파고든 5일장은 독특하기 그지없다.

분위기 100%의 난전이 펼쳐진다. 장독전에 푸줏간, 산더미같은 채소전, 바다를 옮겨놓은 듯한 어물전 등 하나하나 이름 부르기도 벅차다. 장독집 뒤로 경남 최대의 유흥가인 상남상업지구 건물이 늘어선 모양은 기묘하다.

100m 안쪽에 있는 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서는 가격 깎을 생각조차 하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선 깎지 않고는 못 배긴다. 물건을 파는 입장도 슬렁슬렁하다.

   
▲ 요즘도 끝자리 4일과 9일에는 상남시장 주변을 빙 둘러 5일장이 열린다.
환락의 거리로 스며들었나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5일장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남장은 창원 최대의 5일장이었다. 그 위치는 서쪽으로 현 대우아파트와 상업지구를 가르는 도로에서부터 남으로는 대동아파트 쪽 토월천, 북으로 각각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앞 도로와 그 지점에서 시장의 동쪽 경계가 대략 그어졌다 한다.

아직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상업지구 내 서쪽 일대라는 것이다.

남쪽에서부터 옛 상남사거리 방향으로 소전과 개전 가축전, 어물전 피복전 등의 순으로 빽빽이 들어섰던 장터와 슬레이트집, 그곳 길목길목을 연결하던 좁은 골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불과 10년 만에 천지가 바뀌어버린 요즘 상남상업지구의 모습에 ‘내가 꿈을 꾸나’ 싶다.

옛 상남장 피복전 한 어귀에서 1980년부터 식품점을 열었던 강정구(68)씨는 “5일장과의 악연이 지금도 계속된다”고 푸념을 한다.

현대식 상가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열리는 5일장

“한 20년 가까이 옛 상남장에서도 5일장을 찾는 난전에 판을 뺏겼어요. 점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갇혔지. 그런데 지금도 그래.” 현대식 건물이 되면 다르려니 했는데, 지금도 2층 주변 5일장에 재미를 다 뺏긴다는 것이다. “아니 새로 건물 짓고 점포 분양을 했으면 5일장을 안 열어야지 또 이렇게 따라올 줄 알았겠어요? 악연이야 악연…”

창원시가 처음 계획대로 건물 1층은 농수산물, 2층과 3층은 각각 의류·잡화에 식당가로 전문화시켰으면 됐는데, 5일장을 허용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 됐다는 것이다.

2001년 현대식 상남시장을 오픈한 창원시는 처음에 주변의 노점과 난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장터를 잃어버린 노점과 난전 상인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그래서 자리를 바꿔 새로 장이 선 곳이 창원시외버스정류소 뒤편 팔룡동 5일장. 이후에도 상남장 재개 요구는 이어졌고, 지금은 팔룡장과 함께 같은 4일·9일 장이 열린다.

지금은 난전과 상점 상인들이 오히려 공생하며 살고

강정구씨의 생각은 복합적이다. 5일장을 증오하면서도 상남시장이 살 길은 전통 장처럼 건물 내 상가와 상가가 차단물 없이 시야가 뚫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도 밥도 안된 이 장이 살려면 앞뒤를 훤하게 뚫고 재래시장처럼 사람들이 만만하게 왕래를 해야 돼요.”

   
▲ 1998년 철거 직전의 옛 상남장.
△경남 최대의 유흥가로 둔갑


상남동 삼원회관은 개발 바람에 모습을 감춘 옛 창원의 흔적을 안고 있는 보고다. 상남면 창원면 웅남면 세 지역 대표자가 모였다 하여 ‘삼원회’라 이름짓고, 1995년 법인을 만들었다.

그곳에 불과 10년 전인 95년 10월의 옛 상남장 사진이 남아있다. 그리고 삼원회 정일기 사무국장은 사진을 살아 움직이게 했다. 그 역시 장터의 한 귀퉁이에서 전기점을 했던 사람이다.

길 하나 사이엔 화려한 불빛 자랑하는 최대 유흥가가

“지금 시장에서 서쪽으로 상남네거리가 있었지예. 인화약국 현대상회, 제일건재사가 방향마다 들어섰고. 그 방향으로 남중 가는 길에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밑으로 소전 돼지전 닭전 나무전 같은 게 있었습니더.” 설명은 구체적이다. “그라고 남쪽 토월천 방향으로 어물전 대장간, 또 종자 파는 데가 붙었던 것 같고.”

설명하는 사람이 늘면서 옛 기억의 뼈대는 더욱 굵어졌다. 삼원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시장 주변으로 세 동네가 있었다는 것도 빼먹으면 안되지예. 동산마을 하고 두도미, 상동 아입미꺼. 시장주변 동네는 다 두도미로 넣었지예.” 그 동네와 그 골목과 그 장터는 단 몇 년 만에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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