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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득구 진구 5 - 여덟살 득구의 첫 외출


지금 열 살 득구에게 예전의 그런 기미를 느낄 수는 없다.
혼자 외출하지 못하던 득구, 더 정확히 말하면 혼자 아파트 밖을 나가지 못하던 득구였다.

여덟살 까지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이웃 이모집 복도식 아파트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부터 득구는 혼자 나다니는 용기를 얻게 됐다. 9층 같은 통로에 여름이면 집집마다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아파트, 거기다 이종사촌인 한살 위 수현이, 한살 아래 은수가 그렇게 뛰노는 걸 본 득구가 차츰 논을 뜬 것이다.

지금은 열한살인 수현이는 자기 휴대폰으로 친구랑 약속도 잡는다. 은수도 무작정 친구를 찾아 나가서 오후 내내 종 무소식인 적도 있다.
아직 득구에게 그까지는 무리다. 이모집 아파트에서는 모를까, 우리 아파트에서 득구는 혼자 잠깐 나가서 슈퍼에서 과자를 사오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다녀오는 정도다.

득구와 진구가 물론 똑같은 건 아니지만, 지금 여섯살인 진구도 혼자 아파트 밖에 나가는 것은 어림도 없다. 아예 엄마 아빠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어쩌면 애들을 그렇게 키운 탓일까 생각도 한다.

우리 애들에겐 혼자 아파트 밖으로 내보내는 건 이만저만한 벌이 아니다. 엄청난 공포를 안겨주는 중형에 해당한다. 정말 말 안들을 때 몇 번 시도해봤지만, 이건 아예 생똥을 싼다.
때리지 않고 훈육시키려 했다가 이웃집에서 아동학대 소리 나올까봐 이것도 엄두를 못낸다.

그런데 팔룡동 벽산아파트 사는 친구 학수 큰 아들-지금은 열세살-이 예닐곱 때, 하도 말을 안들어 한밤중에 집밖으로 내쳤단다.
당연히 문밖에서 울며불며 엄마 아빠 잘못했어요 절규해야 할 아이가 아무런 기척이 없더란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하도 의아해서 문을 열어봤더니 애가 사라지고 없는 게 아닌가.
얼마나 놀랐을까.
황급히 아파트 1층 입구로 뛰어나온 친구!
거기서 뒤로 나자빠질 뻔 했다고.
자기 자전거를 끌고 내려와 밤 10시 넘어 유유히 아파트 빈 공간을 따라 주유하고 있는 아이를 보았던 것.

들어보니 이 아이는 다섯살까지 고성 시골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키워졌다고. 들로 산으로 틈만 나면 뛰어다녔을 것 아닌가.
물론 성격 탓도 있겠지.
이왕 시작한 이야기, 친구가 일화를 덧붙인다.
지금 여덟살 둘째 머슴아까지 우리 집 득구 진구와 달리 혼자 아파트를 다니면서 어떻게나 이웃 친구들을 불러대는지 이웃에서 아이를 따라 엄마가 함께 오기까지 한다고.
그쪽 부모들이 함부로 애들을 집 밖으로 못보내온지라, 처음엔 찾아온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여 놀다가 나중에는 둘 다 데리고 친구 집을 찾아오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쪽 부모들도 결국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더라고...
학수는 그걸 일러 "종자개량"이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