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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담배


 

담배


11.1 일요일 오전 10시 안민고개에서 경현이와 등산을 시작했다. 시루봉까지 왕복 5시간 14㎞. 요즘 왔다갔다하는 담배생각이 이내 들었다. 끊는다는 것과 핀다는 것. 결핍과 결여, 결단력, 반면에 담배가 줄 수 있는 자유와 여유, 일탈감. 며칠 전 난 담배를 피지 않는 결핍과 결여감을 글을 쓰는 것으로 연결하자 했었다. 그렇다면 쉽지 않은 나의 휴식은? 흔치 않은 나의 일탈과 자유는?

결국 그 시간을 줄여서, 그 방황과 배회의 시간을 줄여서 글을 쓰자는 것인데... 그렇다면 내 글쓰기에 지금 필요한 건? 지금 모자란 건? 꾸준한 연구와 취재, 집필일까. 순간순간 무한하게 펼쳐지는 자유와 상상력일까. 아이디어일까. 아, 담배는 내 휴식의 상징인가, 철저히 고인 내 우유부단의 증거인가.

돌아오는 길 오후 1시쯤, 불모산 갈림길 주말만 연다는 막걸리집에서 꿀맛같은 막걸리 마시고 담배 한대 피웠다.


11.2 월요일 밤 10시. 저녁에 반주로 소주 반병 마셨다. 나는 술 중독 담배 중독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이 기분이 싫지 않다. 지금 아예 술마시러 나가고 싶다. 근데 주병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밥상책상에 앉아 글을 읽어봤다. 내가 썼던 2007년 기획 ‘아파트를 보는 또다른 시각’ 6~10편이다. 6~7편은 ‘내가 이런 글을 썼나’ 싶을 정도로 기특하다. 8편은 ‘이게 아닌데’ 싶었고, 9~10편은 겨우 읽었다. 집중력의 차이이기도 하고, 내용의 흥미도 차이이기도 한 것 같다. 다음은 ‘아파트에서 잘 사는 법 49가지’이다. 한 10분 읽었나. 도무지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는다. 술에 취한 눈이 글을 원치 않는 것이다.


11.3 화요일 밤 10시. 오후부터 담배 생각이 가득했다. 결국 6시 반에 담배 한갑 사서 한대, 30분 전에 술집 들어와 또 한대. 곧 주병이가 올 것이다.


11.4 수요일 오전 10시. 기분이 묘하다. 은근한 게 좋다. 오늘 벌어질 일들을 하나하나 별러 재미있게 풀 수 있을 것 같다. 간밤에 적당히 마신 술기운 탓이리라. 대개 아침이면 칙칙하게 느껴졌던 담배맛마저 오늘은 매혹적으로 기억된다.


11.6 금요일 오후 4시 서울 청계천 주변의 1인시위 현장이다. 경상일보 문영진 지부장과 잠시 교대했다. 지금 앉은 자리는 낙지조개구이볶음 전문점 갯벌타운 맞은편 테이트아웃 커피점 의자. 담배 한대 한다. 아, 한없이 자유로운데, 이 근처 광화문 일대는 아예 집회신고조차 안된다니... 하지만 이렇게 담배맛이 좋다. 정말이지 담배고민은 그만 하고 싶다.


11.7 토요일 오전 거실에서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를 읽고 있다. 어제는 담배고민을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근데 그게 아니다. 어차피 피지 않을 땐 그쪽으로 논리가 자꾸 생각이 난다. 요즘은. 뭔가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끊는 편이 나을 거고, 순간의 여유와 자유가 좋다면 계속 피게 되리라.


11.8 일요일 오전 9시 뒷산 나의 체육관. 나무배트를 휘드른다. 아, 담배. 이런 문데도 될 수 있겠다. 우유부단함이냐, 소심함이냐. ㅋㅋ 둘 다 맞겠지 뭐. 무우를 베듯, 짚단을 베듯, 내 마음을 베어버리듯 배트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