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파트

2014년 7월 27일 득구 진구

버럭씨는 아침부터 열받을 준비가 돼 있었다. 

이상하게 몸이 무겁다. 오른쪽 팔꿈치뼈가 아프고 어제부터 허리통증이 심했다. 아침부터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가 화를 더 돋궜다. 아마 그 무엇보다 열받게 하는 건 오늘 다시 출근을 해 한 주간 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오전 9시에 눈을 떠 진구가 켜놓은 EBS 어린이 만화를 멍청하게 누워서 보던 버럭씨. 그때까지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득구 볼때기를 쓰다듬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경질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TV 잘보고 있던 진구가 9시반쯤 털고일어나더니 "아빠 나 컴퓨터할께" 했을 때부터였다. 어차피 막을 수 없는 거,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내버려둬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화를 냈다 버럭씨는. 

"뭐 벌써부터 컴퓨터야? 쫌 있다 아침 먹고 해." "싫어. 할 거야."

"아침 먹고 하라니까. 너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을 거잖아?"

"싫어. 싫다니까." 

....

내버려뒀다. 아예 막을 수는 없다. 차라리 오전 오후에 각각 한 시간 씩 정도로 줄여서 하게 하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10분쯤 지나서 컴퓨터 하고 있던 진구가 다시 큰방으로 와, 이번에는 득구를 깨운다. 

"형아 일어나 응? 일어나 봐. 0000 좀 켜줘. 응 제발?"

플래이든가 페이든가 정확히 알아듣지도 못했다. 진구 혼자서 조작을 못하겠던지 득구를 막 흔들어서 깨우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의 평화는 깨졌다.

꾸역꾸역 일어나 컴퓨터방으로 간 득구. 형을 깨워 데리고 갔으니 더 신이 난 진구. 그러면 더 재미있게 잘 놀아야 할 것 아닌가. 이번에도 10분도 안돼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진구 "저리 가. 가란 말이야. 내가 할 거라고"

득구 "아니 형아보고 해 달라면서? 잠시 기다려봐"

뭐 그래도 버럭씨는 그때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둘이서 싸우든 말든 씽크대로 가서 설겆이를 시작했다. 물이랑 노는 걸 좋아하는 버럭씨는 설겆이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집안에서는 음식쓰레기 버리기, 빨래늘기 등과 함께 몇몇 그가 도맡아서 하는 일이다.

'이걸 빨리 하고, 밥을 앉히고 마누라가 반찬을 준비하도록 해야지. 그리고 밥 먹고 난 회사로 떠는 거야."


그런데 득구 진구가 싸우는 소리가 또 들렸다.

"아이 참,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야."

"몰라. 내버려 둬. 내가 할 거야"

참다 못한 버럭씨, 첫 고함소리를 날린다.

"나와 득구. 밖으로 나와. 지금 니가 컴퓨터하는 시간 아니잖아. 나와"

그리고 온갖 우거지상을 하고 컴퓨터방에서 나오는 득구. 버럭씨는 다시 설겆이.

조금 있다 너무 조용하다 싶어 쇼파를 보니 득구가 거기서 신나게 폰게임을 한다. 또 열받는 버럭씨.

"야 너. 지금 폰게임하고, 쫌 있다 또 컴퓨터게임 할 거 아냐? 너 지금 거거 오전 컴퓨터 시간으로 칠까?" 

"싫어. 지금은 진구도 컴퓨터하고, 나는 스마트폰 쫌 하면 되잖아. 응?"

으이그 미친다 미쳐.

"아니 그럴 바에야 하루 종일 폰으로 게임하면 되지 뭐. 니 맘대로. 그렇게 안 할려고 시간 정해서 하는 거잖아. 오전에 한 시간 오후에 한 시간 응?"

사실을 말하면 실제로는 이렇게 알아듣기 쉽게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훈계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화가 앞서고 짜증이 앞선다.

30분 뒤 버럭씨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엄마가 막 반찬을 만드는 사이 허리 통증을 없애려 산책을 갖다온 버럭씨는 컴퓨터 방을 향해 또 한번 짖어댔다.

컴퓨터 앞에서 득구가 진구 대신 자리에 앉았다. 그 옆에는 웬일인지 조용해진 진구가 저거 형아 폰으로 역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둘 다 방에서 나와. 당장 겜 그만두고. 밥 먹게. 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