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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아파트키드 진구 1 - 빨간 눈 아저씨

, 엄마 아빠가 또 말을 듣지 않는다.


할 수 없지. 나만의 무기를 쓰는 수밖에.


난 가만히 서서 오른발 뒤꿈치로 큰방 방바닥을 차기 시작했다. 쿵쿵쿵.


네번짼가 다섯번짼가 아빠가 나를 안는 바람에 더 이상 차지 못했다. 그것 봐. 겁을 내면서.


아빠가 나를 거실 소파 위에 내동댕이치고는 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 빨개진 눈으로 이리 저리 삿대질까지 하면서.


하지만 무섭지 않다. 한두번도 아니고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다.


내가 누군데.


엄마 아빠의 약점을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갑자기 집밖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현관벨 소리가 서너번 계속 울렸다.


이건 뭐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아빠가 주섬주섬 바지를 입고는 "누구십니꺼" 하고 문을 열었다.


순간 아빠보다 한참 젊어보이는 아저씨가 불쑥 집으로 들어왔다.


눈이 아빠보다 더 빨갛다


이 아파트엔 왜 이렇게 빨간 눈 아저씨들이 많지?


아저씨는 곧장 소리를 질렀다.


이거 왜 이랍니꺼? 지금이 몇신데 이레 쿵쿵거립니꺼?”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예? 몸 안 좋은 어른도 계신데...”


...


아빠는 아무 말도 못했다.


엄마가 놀란 나를 번쩍 안고 다시 큰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큰방 문까지 닫아버렸다. 그래도 

소리는 생생하게 들렸다.


"하루 이틀도 아이고, 이래가 우째 삽니꺼? 이 시간에 어른들은 큰방에서 주무시야 되는데 잠을 못 


잔다 아임니꺼?”


이 시간에 무슨 소리를 이래 냅니꺼? 일부러 내는거 아임니꺼?"


그때서야 아빠가 말했다.


"이리 들어오보소!"


그러더니 엄마랑 형아랑 나, 셋이 있는 큰방 문이 활짝 열렸다.


아이구 아빤 참, 왜 여기까지 데리고 와?


아저씨 빨간 눈이 다시 보였다. 엄마가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보이소. 저 아들을. 말기도 말기도 안 되는 걸 어쩔깁니꺼? 다리몽대이를 부러뜨릴 수도 없고."


그리고 아빠는 문을 닫았다.


아저씨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소리는 아까보다 약간 낮았다.


"무슨 수를 내야되는 거 아입니꺼? 매트를 깔던지. 그런 것도 하나 없네예?"


"...."


그때 다른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목소리는 아까 그 아저씨보다 더 크다.


됐다 마! 내리가자!”


아까 그 빨간 눈 아저씨 가족인가?


그리고는 현관문 소리가 쿵 하고 났다.


...


아빠가 큰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두근두근.


하지만 아빤 그냥 불만 끄고 나갔다.


아빠가 왜 저러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되는데.


엄마에게 소근소근 물었다.


"저 아저씨 누구야?"


"밑에 집 아저씨야. , 자자. 이젠 괜찮아. 눈 감아"


엄만 역시 내 편이야.


이때다 싶어서 엄마에게 말했다.


"그럼 엄마, 내일 장난감 사 줄거야? 아까 할머니한테 용돈 받은 걸로."


"그래. 자자."


역시 엄마는 내편이야.


나는 엄마 품에 꼭 안겼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다. 아빠가 없다.


아참, 우린 엄마랑 아빠, 형아 모두 큰방에서 함께 잔다.


"엄마, 아빠 없는데?"


"운동 갔겠지 뭐. 더 자. 일요일이니까."


맞다. 오늘은 유치원에 안 가는 날이다. 야호.


그렇다고 잠을 잘 순 없지. 나는 재빨리 TV를 켰다. 일요일 아침엔 내가 좋아하는 '모여라 꿈동


'을 한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혼자 볼 순 없지. 옆에 자고 있는 득구 형아를 깨웠다.


"형아, 형아. 일어나 모여라 꿈동산 해. ? 같이 보자."


"싫어! 잘 거야. 깨우지 마."


어쭈. 내 말을 안 들어. 그냥 포기할 순 없다.


난 형아 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말을 탔다.


"형아 형아, 같이 보자. 일어나. ?"


"싫어. 싫단 말야. 잠 잘 거야."


뒤척거리던 형아가 그만 장농을 차 버렸다.


쿵 하고 소리가 났다. 어제 내가 냈던 소리보다 더 컸다.


그순간 엄마가 폭발했다


좀처럼 없는 일이다.


"이게 미쳤나? 뭘 발로 차노 응? 어제 아저씨 못 봤나?"


"진구가 먼저 그랬단 말이야. 왜 나만 보고 그래?"


"조용히 해. 넌 밖에 나가서 자고, 진구는 혼자서 TV ."


역시 엄마는 내 편이라니까.


그때 현관문이 또 열렸다. 또 그 아저씨?


다행히 아빠였다. 엄마도 거실로 나갔다.


"어디 갔다 왔어?"


"그냥..."


"그냥 어디?"


"그냥 이 근처 아파트들 쭈욱 둘러봤어. 혹시 1층에 빈집 없는가 하고."


", . 그래 있었어?"


"없어. 이 아파트엔 아예 없고, 덕산에 한군데 있던데, 너무 길 옆이야. 집 안이 훤히 다 보여. 아파


트도 오래 됐고."


"나도 밤에 잠이 안 오더라. 이래갖고 어떻게 사노?"


"잠만 잘 자더마는... 그래, 아들을 맨날 이래 잡을 수도 없고. 딱 이 아파트에 1층이 있으먼 좋을낀


..."


한창 모여라 꿈동산을 보고 있던 나는 엄마 아빠가 하는 말 중에서 '1' 하고 '이사'라는 말에 귀


가 솔깃했다.


잠을 포기하고 옆에 누워있던 형아에게 말했다.


"형아, 형아. 아빠가 우리 이사간대. 1층으로."


"맞지. 나도 들었어. 아빠한테 가보자."


형아랑 나는 다시 쿵쾅거리며 거실로 뛰어나갔다.


"아빠, 아빠. 우리 1층으로 이사가는 거야?"


아빠가 얼굴을 찌푸렸다가 다시 웃었다.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이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득구와 진구...


득구가 이제 열한살, 진구가 일곱살이 됐습니다.


주로 아파트에서 이뤄지는 득구와 진구의 위태롭고도 깜찍한 성장기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