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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 더 잊혀지기 전에
이일균
2011. 10. 5. 00:24
이러다간 다 잊어버리겠다.
바다의 나라-내 표현이다-싱가폴에 갔다온지 벌써 보름 됐는데,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굳이 여행을 정리하란 법은 없지만, 엄연히 이번 경우는 취재였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로부터 돈을 받은 바다매립 환경피해 해외취재.
지금부터 점점 잊혀지는 싱가폴 바다의 기억을 되살린다. 한뼘한뼘 매립되는 싱가폴 바다를 기록한다.
'싱가폴 남쪽 인도양'이라는 말이 좋았다. 인도양? 그걸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왠지 내가 이 기획으로 노렸던 또다른 목표, 즉 '바다를 소재로 쓸 수 있는 글을 연상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총면적이 685.4평방키로로 서울-605.4평방키로-보다 조금 큰 말레이반도 남쪽의 섬나라. 50여개 섬이 더 딸린 나라. 적도에서 정확하게 136.8키로 위에 있는 북위 103~104도의 열대몬순 기후의 나라. 상주인구 416만명 중 영주권자인 국민은 338만명이고, 나머지는 유학생이나 외국인 노동자들. 피부가 상대적으로 하얀 중국계가 77%이며, 그 다음 하얀 말레이계가 14%, 인도계가 8%이다. 23~32도 분포인 연중기온은 빵빵한 에어컨 때문에 빌딩숲 속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바닷가나 건물 없는 나대지에서 실감할 수 있다. 내가 창이공항에 도착했던 14일 밤 9시 이후 공항이나 택시 안, 이스트코스트 근처 파라마운트호텔은 한국의 초여름 날씨처럼 그 열기가 살짝 느껴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싱가폴 서쪽 끝, 현대건설의 투아스 매립현장은 한국의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30도가 넘었다.
투아스의 광활한 매립현장. 끝없는 사막을 연상하게 했다. 전체 965만평방미터 매립계획 중에서 87% 공정을 끝냈다고 현대건설 성병근 대리가 소개했다. 2000년 7월 시작한 이 매립현장에 성 대리는 지금까지 3년6개월을 근무하고 있다. 매립지 겉보기가 한국과 다르다. 갯벌 모양의 준설토가 방치돼 있거나, 흙과 모래, 자갈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대개의 한국 매립지다. 그런데 이곳은 온통 모래다. 정말, 가끔씩 보이는 자갈벽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사막같은 모습이다. "전부 다 모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래로 매립합니다. 모래로 성토가 완료됐을 때 호안 역할을 하는 게 자갈입니다. 매립지 끝이 되는 거죠." 그때 창원의 가포신항 매립공사를 하는 강00 부장 말이 생각났다. "모래로 하는게 최고죠.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물기를 빼고 지반을 튼튼하게 하는 데는 모래가 최곱니다." 이상하지? 바닷물 속에 모래를 냅다 뿌린다고 그게 쌓이나? 쌓인다고 했다. 당연히 물기를 뽑아올리는 흡착과정이나 모래를 굳게 하는 공정이 결합된다. 그러면 싱가포른엔 모래 천진가? "전부 사 왔습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그런데 지금은 두 나라가 싱가포르에 모래를 안 팔아요. 싱가폴 영토가 넓어지는 걸 원치않는 거죠. 지금은 미얀마나 캄보디아에서 가져와요. 이동거리가 머니까 더 비싸게 치죠. 할수없이 싱가폴 내륙 사토를 쓰기도 해요. 그래서 처음보다 공정이 더딥니다." 성 대리의 설명은 생소했지만, 이해가 갔다.
멀찌감치 거대한 준설선이 보였다. 모래를 뿌리는 분사 역할을 한다는데, 그게 매립의 첫번째 공정이다. 그 상태대로 목표치까지 모래를 쌓아 땅으로 만드는 것까지 포함한다. 다음 공정이 매립지 끝에 자갈로 경사지를 만드는 것인데, 매립지 경계인 호안이 된다. 다음이 모래 매립지 지반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PVD라고 하는 흡착포를 촘촘히 꽂아 수분을 뽑아 올린다. 모래 분사 모습을 보았으면 했던 것처럼, 흡착포로 수분을 뽑아 올리는 장면도 보고 싶었지만 공정률 87%를 넘긴 마당이라 그러지 못했다. 할 수 없지, 매립공정을 분석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싱가폴 땅 20% 안팎이 매립지라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주거지 앞 매립도 할 거고, 그에 따른 환경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번 취재의 초점이기도 하고. "환경문제는 크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래로 매립하니까 해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어업을 하는 나라가 아니니까 어업피해도 없습니다." 이래서는 소기의 취재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뭔가 환경피해 사례가 있고, 대책이 있어야 한다. 조바심이 들때 쯤 성병근 대리가 덧붙였다. "해수오염 문제가 있죠. 모래 분사에 따라 바닷물이 탁해지는 겁니다. 이 문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제기합니다. 가장 큰 문제지요." 두 나라 국민들 중에서는 어민도 있고, 정치적 의도도 일부 개입된다고 한다. 이 문제는 싱가폴 정부 전담국에서 예방시스템을 갖고 대처한다고 했다. 탁도 기준을 정하고, 기준을 넘지 않게 1일 작업량을 제한한다. '탁도 센서'를 배치해 기준 초과 여부를 알린다.
어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복잡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 그런 건지, 성 대리의 설명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대화 중에 현지 모래가격 이야기가 나왔고, 성 대리는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하지 않았다. 민감한 문제라고 했고, 국제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또 하나 연상되는 게 있었다. 역시 가포신항 강00 부장이 했던 말 중에 "돈 들이면 뭐든 다 되죠. 매립기간 줄이는 것도, 깔따구 같은 해충 피해를 막는 것도" 라던 내용이었다. 결국, 매립공사비만 높이면 다 해결된다는 논리였는데, 뭔가 걸리는 말이었다. 공사비가 올라가는 건 결국 매립지 상업개발 비중을 높이거나, 창원시가 그만큼 재정투입을 많이 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든 시민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하긴 16일 싱가폴 매립지인 마리나베이 남쪽 지하고속도로 공사 현장의 쌍용건설 관계자를 만났을 때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20년 전에 매립했던 땅 지하 14m 지점에 도로를 만듭니다. 지반강화가 먼저 되야죠. 연약지층을 드러내고 시멘트를 뿌립니다.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공법이 있습니다. 돈이 더 들죠." 좁은 섬, 국토확장을 위해 막강한 경제력으로 물량공세를 하는 싱가폴 정부와 매립공사비에 따른 재정부담을 감당해야 할 창원시의 입장은 다르지 않은가. 나의 싱가폴 취재는 창원시의 해양신도시 매립현실과 그렇게 접점을 이뤘다.
창원시의 해양신도시 구상이 갈지자 행보를 보인다.
얼마전 뉴욕 맨해튼 같은 비즈니스지구, 혹은 금융지구를 언급했던 박완수 시장이 지난 6일에는 세계적 음악관 같은 문화공간이나 해양문화테마파크 유치 구상을 전했다.
기존 마산의 도심에는 없는 시설을 유치하겠다는 일관된 원칙 위에서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널 뛰듯 변하는 구상은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줄만하다.
그런 점에서 동남아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신도시 추진 양상은 본받을 점이 많다.
창원의 해양신도시 계획처럼 바다매립지 위에 들어서고 있고, 창원시가 추구하듯 아파트나 상업시설 중심의 신도시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는 곳이다.
"수요가 먼저지요"
50대의 전문가이드인 구명권 씨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한국의 자치단체장들의 싱가포르 가이드 경험이 많다. '한강르네상스' 등 오 전 시장의 서울디자인 계획이 싱가포르강 주변 도시경관계획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전남 영암의 F-1 전문경기장 건설에 대해서는 접근성, 흥행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무리한 정책추진이라는 독설도 내뱉았다.
15년전 이곳에 이민오기 전에 LG 계열사에 근무하며 창원시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는 그는 마산만 해양신도시 계획을 듣고는 바로 물었다.
"수요가 있나요?"
금융지구나 업무지구가 됐든, 해양문화테마파크가 됐든 간에, 투자하겠다는 주체가 있느냐는 말이었다.
"싱가포르강 하구 마리나베이 남쪽 매립지 신도시는 금융업무지구와 문화, 공원 복합시설로 추진이 된다. 그런데 이곳 업무지구에는 세계적 금융그룹처럼 몇년 전부터 투자하겠다는 주체가 수두룩했다. 그래도 매립한지 20년이 지난 최근까지 허용하지 않았고, 정부 도시재개발청(URA)의 신도시계획이 확정된 뒤에야 지금처럼 추진되고 있다."
수요가 없는데 공급부터 한다?
구명권 씨가 알고 있는 싱가포르식 도시계획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라는 것이다.
"한국도 비슷하지만, 싱가포르의 도시계획 단위는 50년이다. 도시재개발청이 지금 신도시를 추진하는 것은 50년 전에 계획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사이 매 10년마다 세부적 마스터플랜이 있다. 마리나베이 신도시에 들어설 금융업무지구와 문화, 공원 복합시설 등은 마스터플랜에 의해 조정되고 확정된 것이다."
"50년 전에 계획된 것"
같은 이야기를 이곳 삼성물산 지하철공사 현장의 권장혁 팀장으로부터 또 들었다.
마리나베이 매립지 남쪽 5키로미터 구간에 지하 고속도로와 지하철을 건설하는데, 삼성물산이 그중 1키로미터 구간공사를 맡았다. 권 팀장은 지하철공사를 관리한다.
"매립지 지하 20m 깊이에 지하철 철로를 만들고 있다. 매립한지 20년 된 곳이라 자연침하로 지반이 이미 안정돼 있다. 물론 연약지층을 드러내고 시멘트를 뿌려 노면 밑 지반을 다시 강화하긴 하지만, 여긴 모든 게 장기간 계획에 의해 결정된다. 지하철을 깔 때는 10년, 20년 뒤에 연결할 지선계획까지 다 나와 있다."
"50년 단위로 도시 전체 개발계획을 세우는 곳이 도시재개발청이라면, 이곳처럼 지하철과 도로계획과 건설을 관리하는 곳이 육상교통청이다. 장기계획과 마스터플랜, 또 세부추진과정을 보면 마치 이곳 싱가포르처럼 씨실과 날실이 엄밀하고 촘촘하게 얽혀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사전 문의 때처럼 현장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할 때에도 현장 안내 요청은 수락되지 않았다. 권 팀장의 양해 요지는 이랬다.
"싱가포르 당국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어차피 시공사 입장이라 그 지침에 따라야 한다. 현장 안내 자체를 차단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불미한 보도가 나가면 싱가포르 당국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본을 춤추게 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통제를 한다는 나라 싱가포르.
그 특성이 이곳 현장 안내까지 작용하는듯 했다.
"이곳이 해양신도시구나!"
공사현장 취재가 안 된 것도 그렇고, 싱가포르 당국의 지침이란 것도 그렇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만 갑갑했다.
뭔가, 시원한 게 있었으면 싶었다.
그때 구명권 가이드가 쌍용건설이 지은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스카이타워를 제안했다. 지상 200m 높이의 57층이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대부분 북쪽 마리나베이를 둘러싼 거대한 마천루에 감탄한다. 국제금융지구다. 그 옆 동쪽으로 싱가포르강과 마리나베이를 따라 머라이언파크나 보트키, 클락키 등의 수변공원과 카지노센터, 야외공연장이 마치 조감도와 현실이 100% 일치한 것처럼 펼쳐졌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곳은 그 반대방향 남쪽이다.
앞서 언급한 마리나베이 남쪽 신도시 추진지구다.
50년의 장기계획과 10년 단위의 마스터플랜이 낳은 작품이다.
매립한 뒤 20년이 지난 뒤에야 속속 내용물들을 채워넣는 인고의 결과다.
조개껍데기 모양의 식물원만 모양을 갖췄을 뿐 온 사방이 '지금은 공사중'이다. 남쪽 끝에 앞서 들렀던 삼성물산, 쌍용건설의 지하 고속도로 공사현장이 있었다.
"수요가 먼저지요"
"50년 전에 결정된 것이죠"
두 마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