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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엽의 르포

이일균 2010. 10. 7. 23:54

역시 그는 라이터 돌이었다.
뜨거웠다.
처음부터.
나까지 뜨거워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단번에 뜨거워져버렸다.
10월 6일 밤 7시에 서울 인사동의 한 주점에서 뜨거운 르포작가 오도엽과 시작된 술자리 담화는 8시 반 정도까지 진행된 게 거의 다였다.
그 뒤는 이 자리 저 자리 옮기면서 술이 술을 먹고, 술이 나를 먹어버린 시간이었다.
아쉬웠지만,
사실 오도엽은 한 시간 안에 자신의 르포 이야기를 다 해버렸다.

작가는 이소선 여사와 꼬박 1년 넘게 붙어살면서 여사의 전기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를 2년 전에 냈다.
그리고 올 초에는 노동현장 르포 '밥과 장미'를 냈다.
물이 오른 것이다.
게다가 오도엽은 올 연말에 책을 한 권 더 낼 거고, 내년에는 60~70년대 여성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역작을 내겠다고 했다.
누가 말릴까.
그뿐인가.
강서구청 같은 곳에서는 글쓰기 강의를 하고, 청년모임 등 2개의 공동프로팀을 지도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바삐 돌아다녀서 그런가.
얼굴 몸 어느 구석에도 군살이 없이 오히려 홀쭉해 보였고, 겨울에 싸돌아다니다 들어온 사람에게 느껴지는 바람냄새가 났다. 
"잠은 어디서 자구요?"
"아, 연희동 가면 문인촌이 있어요. 방 하나에 한 열너댓평 되죠. 거기 있어요. 한달에 평당 5천원 주고요. 끝내주죠."
말투에는 리듬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도엽 씨가 그렇게 잘 나가는 이야기만 한 건 아니다.
마산에 계신 김하경 작가 이야기가 나오자, 당장 경건해졌다.
"아휴 참, 요즘은 연락도 못 드리고... 지난번 책 밥과 장미는 내기 전에 보여드리지도 못했어요."
"왜요?"
"두려워서요. 저도 자신이 없고... 그 전에 이소선 여사 책은 얼마 혼이 났는지 아세요? 말도 마세요."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세요?"
"아니,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이신 여사의 글을 왜 틈만 나면 노닥거리는 식으로 썼냐는 거였죠. 어머니의 분노를, 투쟁을, 혁명의지를 직설법으로, 정공법으로 왜 쓰지 않았냐는 것이죠."
"아, 예..."
"저 나름대로 생각은 쓰는 내가 투쟁을 앞세우지 않고, 독자들이 자연스레 투쟁을 다짐하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선생님 생각에는 맞지 않으셨던 것 같애요."
세병 째 소주로 발그레한 얼굴로 싱긋이 웃었다.
"하지만, 내년에 책을 낼 여성노동자 이야기는 반드시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정말이에요."
불끈하는 다짐이 어떤 의미인지 내가 분명히 이해한 건 아니다.
아마 나름대로 자신의 방식을 가다듬어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작가란 표현이 맞을까.
그렇게 후다닥 뜨거워졌다가, 금방 술에 취해버린 자리라 그걸 못 물어봤다.
시인 오도엽?
어쨌든 오도엽은 역시 유쾌한 사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이야기가 스파크처럼 불꽃이 튀고 난 뒤에는 금방 분위기를 바꿨다.
"일균이 형! 어때요? 남은 소주 한 병은 반납하고 분위기 좋은 데로 가까요?"
그 기세에 눌려 나는 밤 11시쯤 찾아뵈려 했던 잠실 외가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했다.

언제 그 쪽지를 도엽 씨가 나에게 줬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지금도 꾸깃꾸깃 수첩 한 장을 찢어 적어준 그 쪽지를 나는 쥐고 있다.
"꼭 읽어보라"고 했던 것 같다.

'소금꽃 나무

    김진숙

출판사 후마니타스'



<밥과 장미> 속의 문장들.

플롤로그 - 사실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저울의 균형입니다. 편파적으로 글을 썼는데 어떻게 저울의 균형이냐고 얘기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진 저울은 글밖에 없습니다. 바로 내가 사는 사회의 저울입니다. 권리를 침탈당하고 잃은 쪽의 입장만을 편파적으로 많이, 아니 전부이다시피 글을 구성했습니다. 이처럼 고상하지 못한 방법을 택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굳이 내 글이 아니더라도 권리를 빼앗는 쪽은 더 많은 기회를 이미 사회에서 독점했기 때문에. 굳이 나까지 나서서 어줍잖은 저널리스트나 르포라이터의 폼을 잡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글은 편파적입니다. 저널리스트답지도 않습니다. 르포르타주의 기본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가장 공정하고 가장 저널리즘에 가깝고 르포르타주의 정신에 가깝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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