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이 침수 불러' 2011년 주거지 앞 매립문제 기획 9~10
2003년 초토화된 어시장·해안 잊었는가 | |||||||||||||||||||||||||||||||||||||||||||
[주거지 앞 바다매립 따른 환경피해](9)마산만 매립에 앞서 기억해야 할 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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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2일 오후 4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서항부두 인근 수변공원. 태풍 매미 희생자 8주기 추모제가 이곳 추모공원의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진행됐다. 마치 "잊지 말라"는 듯, 18위의 성명이 비석에 선명했다. '김다정 김혜란 문봉진 박상진 정아영 진홍길 정시현 서영은 곽정아 김광임 김귀임 김상훈 김중봉 배병옥 유희성 전은연 조현극 최혜지' 그들 중 13명이 이곳 마산만 해안의 건물 속에서 희생됐다. 태풍이 왔을 당시 해운동 해운프라자 지하상가에서 8명의 희생자가, 두산아파트·스파랜드·경민파라다이스 등 건물 지하에서 5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그밖의 5명은 마산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 희생됐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8년 전으로 = 2003년 9월 12일. 추석 다음날 밤이었다. 태풍이 예고됐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 매미는 중형 태풍으로 예보됐다. 태풍의 중심부 풍속이 초속 30~40m로 강했지만, 대형이라는 말은 없었다. A급 태풍이라는 말에도 한동안 태풍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한 마산 시민들은 둔감해져 있었다. 그때 간과됐던 것 중의 하나는 하필 그 시기가 마산만 만조 때로, 수위가 가장 높아지는 때였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태풍 매미는 12일 밤 마산만에 도달했고, 밤 10시경 최고조였다. 당시 마산기상대는 이 지역 최대 순간 풍속을 밤 9시 43분의 33.8m로 기록했다. 이 기록은 당시 매미가 기록했던 제주 지역 초속 60.0m(제주와 제주 고산 12일 오후 4시 10분·오후 6시 11분)나 여수 지역 초속 49.2m(12일 오후 6시57분), 12일 오후 8시 57분 통영 지역 초속 43.8m(12일 오후 8시 57분)에 비해 강도가 낮았다. 그런데도 만조와 겹치면서 마산만 인근 주민들 중에서 유독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마산만 만조 시간이 12일 오후 9시 53분. 만조와 만난 태풍은 마산만 바다 파고를 2m까지 높였다. 당시 그 현상을 언론에서는 종종 '해일'이라고 표현했다. 그 파도가 마산만 해안 전체를 덮쳤다. 서항부두 앞 파도는 해운동 매립지를 덮치며 경남대 앞 월영광장 선까지 침수시켰다. 중앙로 남쪽 모든 상가의 지하층이 물에 잠겼다. 어시장 앞 파도는 해안도로를 지나 현재의 어시장 일대를 광범위하게 침수시켰고, 그 끝 선이 남성동 지하도가 있는 중앙로였다. 중앙로 아래쪽 상가와 주택, 특히 아파트 지하는 신마산부터 마산자유무역지역 일대까지 물에 잠기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자유무역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산호동 정문 쪽부터 양덕동 후문 쪽 대부분 매립지 위에 건축된 공장마다 침수가 다 됐다. 침수 선은 봉암로까지였다. 봉암공단도 물론 침수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놀라운 주장이 제기됐다. 마산만 해안 침수 선이 마산만 매립지도와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쉽게 말해 매립한 땅은 한결같이 침수됐다는 것이다.
◇"침수선과 매립선이 일치한다" = 피해 복구가 어느 정도 이뤄진 뒤, 당시 마창환경운동연합과 도시연대 등의 시민단체가 이런 주장의 근거로 지도 하나를 제시했다. 마산만 매립 문제에 천착해온 허정도 건축사가 사료에 기초해 제작한 1910년 이전 마산만 자연해안선 지도였다.(그림 참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현재 양덕동, 봉암동 일대 마산자유무역지역과 봉암공단 자리다. 이 지도의 해안선을 보면 현재 자유무역지역과 봉암공단 위 봉암로까지, 곳에 따라 그 위까지 본래는 바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라운 건 이 지도상의 해안선이 2003년 태풍 매미 때 양덕동, 봉암동 일대의 침수선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유무역지역 정문 맞은편 산호동의 해안선 또한 매미 때의 침수선과 일치한다. 그 다음 눈에 띄는 곳이 현 동서동과 어시장 일대 매립 전 해안선 위치다. 지금은 어시장 범위가 해안도로와 그 아래 장어거리와 바닷가 횟집촌이 있는 곳까지 확대돼 있다. 지도상에는 지금의 어시장은 물론, 그 위쪽 간선도로까지 본래는 바다였다는 사실을 전한다. 마산에서 자유무역지역 다음으로 매립 규모가 컸던 곳이다. 이곳 역시 2003년 태풍 때 침수선과 매립 전 해안선이 일치한다. 끝으로 1980~90년대 대규모 매립이 진행됐던 현 월포동과 해운동 마산항 제1부두 쪽과 서항부두 쪽 지도를 보자. 이곳 아파트단지에 사는 주민들조차 본래 바다였음을 알고 있지만, 지도에 나타난 해안선을 알게 되면 매립지의 실체를 체감하게 된다.
◇'매립 = 침수의 원인' = 단순히, 매립지여서 태풍 침수가 됐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 등은 그 근거를 댔다. 매립지 지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해운동 쪽 마산 서항 매립지와 어시장 쪽 구항 매립지 지반 자체가 낮다는 문제였다. 지반 높이가 바로 옆 바다의 평균 수심인 2m보다 1m 높은 3m라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 국립해양조사원은 태풍 매미가 몰아칠 때 마산만 해수면이 4.52m까지 올라간 것으로 측정했다. 1.5m 이상 지면을 삼켜버렸던 셈이다. 해양조사원 관계자는 "여기에 태풍이 겹치면서 풍속과 심해파고, 기압상승고 같은 요인이 복합돼 최소 2.6m의 파고가 더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 요인을 합하면 당시 파고는 최소 4.7m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운동의 대단위 아파트단지는 서항부두나 마산항 제1부두에서 직선거리로 50m 안팎이다. 동서동과 신포동 바다 쪽 어시장은 해안에서 불과 10m 정도 떨어져 있다. 해일에 가까운 파도의 상륙을 완충할 만한 공간도 없고, 간격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이 주장은 여전하다. 창원시의 해양신도시 개발계획 확정을 앞두고 '더 이상의 마산만 매립 반대', 혹은 '매립지 이전'을 주장하는 창원물생명시민연대 측은 이렇게 주장한다. "단지 경관 문제 때문에 매립을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매립이 사람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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