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시기상조인가?
몇 차례 기사를 쓰면서도 경남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대체로 맞는 이야기지만, 교권과 학생인권이 충돌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이해가 잘 안 됐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다. 인권이 먼저 강조된다면 교실 내에서는 휴대전화를 교사가 보관한다 식의 규정을 정하기도 어려울 거고, 정하지 않으면 교실 내에서 생길 실랑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나 교육과학기술부, 경남교육청 등 보수 지향의 집권구조 속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협의대상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웠다. 현실성과 우선 순위 측면에서 한참 뒤의 일로 느껴졌다. 가능하지 않은 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취재와 기사 작성을 통해 학생인권조례가 지니는 의의를 읽을 수 있었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이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입시교육 경쟁교육에서 사람교육 공동체교육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의 내용과 쟁점을 다룬 다음 기사를 읽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교육위, 주민발의 최초로 본회의 상정조차 막아 | ||||||||||||||||||||||||||||||||||||||||||||||||
학생인권조례 자유·평등·복지권 놓고 교육현장 시각차 여전…현장 목소리 들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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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엄연한 인격체 아닙니까. 인권의 주체임을 제도로 보장해야죠." "시기상조입니다. 학교와 교실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 조항이 많습니다."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는 22일 오후 늦게까지 주민발의로 상정된 경남학생인권조례안을 심의했지만 끝내 부결시켰다. 지난 5년 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했던 학생인권조례 제정 경남본부 측은 부결 결정에 울분을 토했다.
◇"학생과 교사들이 지난 5년간 직접 준비한 안입니다" 도내 2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학생인권조례 제정 경남본부. 중심에 있는 경남교육연대 김현옥 집행위원장이 지난 5년간의 지난했던 준비과정을 이렇게 전했다. "서울과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와는 달라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지난 5년간 직접 준비했거든요. 어느 한쪽이 주도한 게 아니죠. 2000여 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고, 토론회 공청회도 거쳤어요. 2010년에는 통과 직전이었는데, 당시 도의회 임기가 다 되는 바람에 안 됐어요. 경남의 인권조례는 다른 곳처럼 진보 교육감이 주도한 게 아닙니다."
내용도 다른 곳과 차별된다고 했다. 어떻게 다를까. 우선 전문이 학생인권조례안의 취지를 담고 있다. '학생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비롯하여 자유와 평등에 관한 천부적 인권과 다양한 권리를 가지며, 이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양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침해받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학생은 학교 안과 밖에서 자신의 사상이나 양심에 기초하여 행동하며 어느 누구로부터도 신체의 자유를 억압당하지 않는다. 또한 학생은 나이, 학업성적, 주거지역이나 형태, 가족형태, 경제력, 출신지역이나 학교의 종류, 학년, 성별, 장애, 종교, 인종, 피부색, 용모, 국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 학습과 자아실현에 필요한 시설과 쾌적한 환경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중략)'
◇자유권과 평등권, 복지권의 내용 조례안의 내용은 제2장 자유권부터 시작된다. 대표적인 내용이 제9조 신체의 자유다. 쟁점 중의 쟁점이다. 체벌 금지와 두발 자유를 뼈대로 한다. 제7조 학생자치와 참여의 보장, 제8조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할 권리도 주요하다. 제10조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와 제11조 표현과 집회의 자유도 대표적 내용으로 언급된다. 자유권 부분에서 특히 반론이 많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게 학생의 신체의 자유와 교권의 상충 문제다. 관련해 창원의 한 중학교 교사는 "요즘 학생들 가르치기 정말 힘들다. 지금도 제약이 많은데 그걸 제도화한다는 거냐. 직접 와서 가르쳐봐라"고 반문할 정도였다. 도의회의 한 교육위원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라니 지금 학교 현실에서 말이 되냐"고 따지듯 말했다. 이에 대해 경남교육연대 김현옥 집행위원장은 "인권과 교권은 본질적으로 상충될 수 없다. 상호 존중되고 보완돼야 한다. 당장 급하다고 해서 인권이 교권을, 혹은 교권이 인권을 억누르는 존재가 돼서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두 가치가 장기적으로 병립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라는 교육위원의 지적은 잘못된 인식이었다.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정확했고, 그 내용은 '학생은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 '학생은 교외 문화행사 및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데 제한받지 아니한다' 정도였다. 다음은 제3장 평등권으로, 제16조 차별의 금지 조항이 핵심이다. '학생은 학년이나 나이로 인하여 차별받지 않는다'로 시작된 항목이 '학생의 용모나 신체조건, 출신지역·국가, 민족성, 병력, 징계, 임신이나 출산, 종교, 장애, 인종, 피부색, 생각이나 사상의 차이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에 이르러 논란거리가 됐다. 앞서 언급된 교육위원은 "임신이나 출산이라니 말이 되나. 그걸 보장하란 말인가"라며 "이 역시 독조조항"이라고 했다. 하지만, 임신이나 출산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본래 의미를 내세운 반론도 만만찮다. 조례안은 제4장 교육복지권, 제5장 학생인권보장위원회 등, 부칙으로 이어진다.
◇고영진 교육감의 반대 의견서 고영진 교육감은 이 주민발의 안을 지난달 23일 도의회에 부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반대 의견서를 첨부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기본권 존중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교육에서의 학생인권은 보호해야할 중요한 가치이기에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에서 학생인권보호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경상남도학생인권조례안은 우리 교육 현실과 배치되고, 법 체계에 위배되는 문제점이 있다.(중략)' '지방자치단체의 법령 제정이 주민의 권리제한 또는 의무부과에 관한 사항이라면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 위임없이 제정된 조례는 효력이 없다. 이 조례안은 법률의 위임 없이 학교의 설립자 및 경영자, 학교의 장, 교직원, 학생의 보호자, 교육감 또는 관계 공무원들의 권리(또는 권한)를 침해·제한하거나 의무를 명시적·묵시적으로 부과하는 규정이 다수 존재한다. 특히 신체의 자유,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 표현과 집회의 자유, 성차에 의한 차별의 금지, 쾌적한 교육환경과 건강권 등은 개별 학교가 학교규칙으로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사항임에도 조례의 형식으로 모든 학교를 일률적·획일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헌법과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등 상위 법령에 위반된다.' 의견서는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이 조례안은 학생의 권리만 강조하고, 학생의 의무와 바람직한 학습권에 대한 고려 없이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학생들에게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방종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도의회가 교육현장의 목소리 청취해야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따로 들었다. 학생인권조례제정경남본부가 지난 5년간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았다고 했지만, 이 과정에서 소외된 교사들도 있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심의한다고요? 전혀 모릅니다. 이야기는 많이 해왔죠. 보통 나이 든 교사는 부정적이고, 젊은 교사는 괜찮다고 하죠. 모르겠다는 분들도 3분의 1 정도 되고. 어떻든 간에 의견수렴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김해의 한 고교 교무부장) "작년에 학생인권조례 서명 받을 때 5학년 담임이었어요. 애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서명지를 주었더니 이웃 상가에까지 가서 받아왔더라고요. 30명이 100명 넘는 서명지를 받아왔어요. 어쨌든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은 학생들입니다. 학생들 마음 다치지 않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의가 진행됐으면 해요. 학생들 의견이 주로 반영돼야 하고요. 어른들 위주로 하면 반대가 많을 거예요."(창원의 한 초등학교 교사) 22일 도의회 교육위의 부결 결정과 상관없이 학생 인권조례 제정의 대장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도의회 차원의 교육현장 의견 수렴이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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