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6학급의 도내 한 면소재지 초등학교.
교사 ㄱ 씨는 옮긴 학교에서 지난 2일 아이들을 맞은 이후 단 하루도 제 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다. 퇴근 후 집으로 일거리를 가져가지 않은 적도 없다. 매일같이 다음날 새벽까지 일했고, 지난 18일까지 토∼일 주말 이틀간에도 계속 출근했다.
3월 1일부터 지난 16일까지 그가 읽고 검토하거나, 처리해야 할 경남도교육청 혹은 지역 교육지원청 발송 공문만 60건을 넘었다. 같은 기간 학교 전체에서 받은 공문이 300건을 넘으니 적은 교사 수에 일일이 나눠도 그 정도는 모두 돌아간다.
더구나 이번 학기에 학교를 옮긴 ㄱ 씨는 처음 만난 아이들과 친해질 만한 여유가 따로 없다. 처음 접하는 부임지 분위기도 여전히 생소하다.
ㄱ 교사는 그래서 호소했다.
"학기초라서 어쩔 수 없다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아이들 아닌가요? 공문이나 업무처리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올해는 주5일 수업제 업무까지 부담 가중 = 특히 올해는 주5일 수업제와 학교폭력 관련 업무와 공문이 쏟아지면서 부담이 더 가중됐다.
3월 들어서만 '주5일 수업제 시행 관련 토요프로그램 운영현황 제출'과 '주5일 수업제 운영 보고서식 및 내용변경 알림', '토요프로그램 확대시행 협조 및 추진상황 제출' 등 수신 공문이 8건을 넘겼다. 발신 부서가 다른 토요 돌봄교실, 방과후학교 등의 공문·업무를 합하면 그 수는 더 증가한다.
그렇지 않아도 업무가 많은 3월에 주5일 수업제 공문 부담이 가중되자 일선 교사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게 과연 교사들 주 40시간 노동과 교육 기회의 다양화라는 주5일 수업제 취지에 맞는 건가요?"
이들은 교육과학기술부와 경남도교육청이 주5일 수업제 이후 오히려 토요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하고, 참여학생 수도 의식적으로 늘리려 하는 점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주5일제 담당 장학사가 해명했다. "주5일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진통이죠. 교과부는 토요프로그램 목표를 가정과 사회가 함께 하는 토요학교로 잡고 있습니다. 목표가 실현되면 토요프로그램이 학교에서 사회로, 강사도 교사에서 지자체 초빙 강사로 확대되겠죠. 그 목표로 가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소규모 초등학교 교사들의 3월 업무 부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5일제 수업 대비 토요프로그램 활성화 방안', '학교 학년 학급 교육과정 준비', '학부모총회 교육과정 설명회 준비', '환경정리', '연간계획서 준비', '평가계획 준비' 등은 그나마 끝낸 업무들이고, 대부분 공문이 따랐다.
이처럼 새 학기를 맞이하면 각 학교마다 업무와 공문 수가 많아지기 마련이지만 교사 수가 적고, 수업 시수는 큰 학교와 같은 작은 초등학교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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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학교 교사들이 3월 처리할 공문 건수가 70∼80건에 이른다. /이일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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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친해질 시간이 없어요 = 그나마 학급 수와 교사가 많은 큰 학교에서는 고루 분담이 되지만, 교사 수가 작은 학교에서는 그만큼 배당되는 업무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사정은 도시지역 소규모 학교도 마찬가지다.
15학급 학교의 교사 ㄴ 씨 역시 3월 들어 지금까지 처리한 공문 수가 60건에 이른다. 윤리부장을 맡고 있어 학교폭력 관련 공문이 대부분이었고, 실적·현황 보고까지 요구한 공문도 10건이 넘었다.
"학교마다 같은 분량의 공문이 도착하는데, 이를 배당 받는 교사 수가 모자라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 어떻게 됐든 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이 공문 수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학교를 새로 옮긴 교사는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아직은 생소한 학교나 해당 지역 분위기에 적응하는 문제도 있다.
"아이들 파악하고 친해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죠. 그런데도 이 일이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병행하는 정도가 되는 거죠. 대충 넘어가는 일이 되거나…"
도교육청 관계자도 이 문제에 공감했다. 하지만, 결론이 달랐다. "맞습니다. 학기 초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학생들을 파악하고 친해져야죠. 그런 점에서 3월은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1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때죠. 3월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1년이 정해지니까요."
일선 교사나 도교육청 관계자 모두가 하나같이 "3월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각론은 달랐다. "아이들이 중요하지 않으냐"는 교사와 "아이들 잘 가르치려면 계획을 잘 세워야 안 되겠느냐"는 교육청 입장이 맞서는 듯했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 그러면 일선 교사들이 제안하는 대책은 뭘까?
이에 대해 앞서 만난 ㄱ, ㄴ 교사 등은 "어쨌든 교육청에서 공문 수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공문 처리가 전산화되면서 오히려 그 전보다 이것저것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게 교장, 교감 선생님들 이야기예요. 심지어 교육청 내에서도 각 과별로 실적을 내야 하니까 공문이 늘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결국, 줄일 수 있다는 거죠."
이 지적에는 도교육청 관계자도 동의했다.
"공문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다 공감합니다. 교육청도 노력하고 있어요."
모두들 다 공감한다니 결국, 과제는 이행방안인 셈이다. 과연 얼마나 이행될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업무마다 출장이나 연수를 요구하는 것도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방과후학교나 대안교실, 장학활동이나 특수교육 등 대부분 계획전달용인데, 이를 굳이 모여서 연수하는 경우를 줄이자는 것이다.
또 다른 업무 경감 방안도 있었다.
"새 학기에 몰리는 일 중에는 교사가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업무도 있어요. 이런 업무는 역할에 맞게 업무분장이 돼야죠."
방과후학교 준비나 돌봄교실 교사 채용과 관리, 학습준비물 등 물품구입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학교별 행정실 업무 연계나 교무·행정보조 인력 확보 등의 방안이 흔히 거론되지만, 이 역시 구체적 성과가 나오기 전에는 신뢰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