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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산다는 것 지방에 산다는 것에 대해 또 쓰고 싶었다. 좀 더 깊이를 갖추고 싶었다. 더 절절하게 고개 끄덕일 수 있게 쓰고 싶었다. 계기가 됐던 게 2017년 5월 9일 대통령선거였다. 대선 기획으로 '대선 속의 지 방'을 제안했고 관철됐다. 특히 그 첫번째 편에서 지방에 산다는 것에 대해 썼다. 앞서 지방자치 기획에서 다뤘던 글과 차이 가 있었을까? [우리가 주인이다]대선 속의 지방 (1) 한국사회 지방의 현주소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17년 03월 15일 수요일 결국 국민이 쟁취한 대선이다. 언론이 도화선을 만들고 국민이 촛불로 점화했다. 국회와 사법부 가 탄핵으로 단죄해 만든 대선이다. 그러나 냉정 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혹시 나의 투표가 탄핵 사태 원인이 된 것은 아닌가? 지난번 나.. 더보기
지방에서 산다는 것 '지방'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싶었던 건 2016년 초였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그 전에 했던 대개의 기획이 그랬듯 의도적이었다. 누구나 다 알 만한 빤한 주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정말 그럴 수 있게 빤하지 않게 취재하고 쓰고 싶었다. 지방이라는 주제는 정말 그럴듯했다. 대중성 있고, 공감도도 있고, 반향이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내가 지방에 살고 있고, 인생 전반에 걸쳐 서울과 지방이라는 종속적 배타적 범주에 지배 돼 왔고, 지역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있을까. 그래서 썼던 게 아래의 기획 첫 편이었다. 내가 좀 더 자세히 쓰고 싶었던 건 이 기사의 첫 부분 '지방에 산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눈으로 본 홍준표 도정] 1부 왜 지방자치인가? (1) 지방과 지방..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상남동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30일 오후 6시. 10년 사이 상남동 거리가 변한 건 행인들 연령대가 아닐까. 그땐 낮엔 청년층 밤엔 장년층 식이었지만 요즘 밤낮 청년층이 많다. 그것도 중고교생까지 늘었 다. “변하긴 뭐가 변해?”랄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다. 업소 성격부터 그렇다. 상남동 분수광장 맞은편 마디미로 1층 업소들을 보자. 휴대폰할인마트, 더페이스샵, 토니몰리, 아리따움, 스퀘어, 이니스프리, 할매낙지, 펍 비노, GS25, 분수대앞(액세서리), 빽다방, 참치나라, 오렌스(액세서리), aimerfeel japan, K깜도, 섹시쿠키, 미 니드레스, 폰고… 번화가 1층이라는 특징이 있지만 죄다 청년층 상대 업소다. 건물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10층 짜리 하림빌딩 간판이다. 1층 빅토리아, ..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 - 창원 상남동 골목과 사람(13)10년만에 천지가 바뀐 창원 상남장 가축전·어물전·피복전…장터로 통했던 옛 상남동 골목들 창원 상남시장은 요즘 희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알다시피 시장은 3층 짜리 현대식 건물이다. 그런데 이 건물 2층 주변으로는 4일과 9일 5일장이 열린다. 건물의 난간을 절묘하게 파고든 5일장은 독특하기 그지없다. 분위기 100%의 난전이 펼쳐진다. 장독전에 푸줏간, 산더미같은 채소전, 바다를 옮겨놓은 듯한 어물전 등 하나하나 이름 부르기도 벅차다. 장독집 뒤로 경남 최대의 유흥가인 상남상업지구 건물이 늘어선 모양은 기묘하다. 100m 안쪽에 있는 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서는 가격 깎을 생각조차 하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선 깎지 않고는 못 배긴다. 물건을 파는 입장도 슬렁슬렁하다. ▲ 요즘도 끝자리 4일.. 더보기
10년전 마산어시장 진동 대풍골목 골목과 사람(3)마산 어시장 진동·대풍 골목 파도에 잔 부딪치며 회 한정소주 한잔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3월 18일 토요일 할머니는 계속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다. 웃으면 작은 눈매나 눈썹, 입술이 하나같이 동그랗게 된다. 그런데 칼을 잡으면 표정이 냉정하게 변한다. 소나무로 만든 50㎝ 두께 도마 위 시커먼 우륵 모가지에다 칼끝을 ‘꾸욱’ 누른다. 요즘 철이 좋다는 도다리나 숭어는 그렇게 목을 따도 펄떡거린다.그렇든 말든 할머니는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뱃속의 내장을 꺼낸다.그 때 할머니의 눈두덩은 툭툭해지고,양쪽 볼은 볼록하면서 단단해진다.단호해 보이는 표정이다. ▲ 대풍골목에서 20년 넘게 횟집을 운영해온 김복권 할머니. △진동골목, 대풍골목으로 상징되는 ..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어시장 진동 대풍골목 “뽈락 1키로예! 껍데기 뺏기지 말고 새꼬시로! 그래 안 하먼 안 묵심미더.” “거기 다가? 오늘 숭어가 좋은데…” “숭어도 1키로 주고, 낙지 개불도 조금씩 주이소!” 덥수룩한 노가다 차림새 중년남자 넷이 횟집 주인장과 흥정을 한다. 마산어시장 안 대풍골목이다. 곧바로 뽈락 몇 마리와 숭어 큰 놈 모가지에 피가 튄다. 끝없는 마산만 바다 매립으로 어시장 앞쪽 어판장과 장어골목, 복집골목은 기세가 줄었지만 여긴 아니다. 골목 아줌마들은 말한다. "까딱 없소!" 횟집골목과 대풍, 진동골목으로 이어지는 수산물시장 골목은 지금도 그렇게 펄떡펄떡 뛴다. 마산어시장이 200년 넘게 생명을 이어가는 역동성, 생동감의 원천이다. 마산 사람들이 사는 일에 지쳤을 때, 숨 쉬는 것조차 힘에 겨울 때 어시장을 찾는 이유가.. 더보기
10년전 마산어시장 복국 장어골목 골목과 사람(1)마산 남성동 어판장 골목 물고기 생사가 갈리는 ‘천년의 포구’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3월 04일 토요일 왜 골목을 기록하는가? 답을 찾기 위해 골목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 ‘들어가면 못 나오는 곳’ ‘연인들이 몰래 뽀뽀하는 곳’. 이런 대답도 있었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이 나란히 가는 곳’, 응답의 공통점은 ‘사람의 소유’라는 것이었다. 바쁜 사람 한가한 사람, 기쁜 사람 슬픈 사람, 나이 어린 사람과 지긋한 사람이 함께 부대끼는 곳이 골목이다. 골목의 쇠락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새삼스럽다. 네모로 블록화 되는 상권과 주거권으로,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옛 골목이 거리로 구획돼 가는지 오래다. 주..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어시장 복집골목 장어골목 창원시 남성동 마산수협어판장은 마산어시장을 열고 마산을 연다. 새벽 내내 이어지는 수산물 공판작업 준비, 오전 6시에 시작되는 경매로 마산이 시작된다. 그렇게 새벽을 열었던 어민들이, 또 상인들이 인근 복집골목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어판장 매 물이 넘쳐날 때 복집들은 하루 24시간 영업을 했고, 돈 뭉치가 든 전대를 놓고 가는 일도 다반사 였다. 하지만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대개 밤 9시면 문을 닫는다. 10년 전 어판장 골목을 찾았을 때, 또 복집골목을 찾았을 때 경매사들이, 복집 주인장들이 그렇게 추억했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흘렀다.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옛날 그 역동성을, 생동감을 다시 찾았으리라 희망했다. 그러나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사이 벌어 진 일을 나는 알고 있다. 어판.. 더보기
노무현의 꿈은 문재인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참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봉하마을 인근에 살기 때문에 틈틈이 들를 수 있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8년 전 2009년 5월 23일 오전 양산부산대병원에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라고 알 렸던 문재인 씨가 대통령이 되어 돌아오는 날이다. 운명적 만남을 옆에서 보고 싶었다. 5만 명의 인파 속에 오후 2시부터 추도식이 시작됐고 2시 40분께 문재인 대통령이 단상에 올랐 다. “노무현의 꿈은 오늘 이렇게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실현되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추도식 참석은 오늘이 마지막일 거다.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마치고 나서 기쁜 마 음으로 찾아뵙겠다.” 가슴 뭉클한 추도사였다. 대통령으로서 추도식 참석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다짐은.. 더보기
거기다 행복까지 바래? ‘행복’이란 말을 꺼내기가 미안한 세상이다.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직업을 가질 기회, 재난·사고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되 지 못하는 사회다. 그래서 행복을 말하면 마치 옆에서 눈치를 주는 것 같다. “너는 거기다 행복까지 바래?” 마침 며칠 전 TV에 철학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깜짝 출연해 행복을 말했다. “한국에 여섯 번이나 왔다는데, 한국인들은 행복해 보이나?” “NO!” 그리고 그는 행복하기 힘든 한국인들의 평균적 여건, 살인적 경쟁체제 같은 걸 이유로 꼽았다. 하 지만 그 뒤 메시지는 희망적이다. “(하지만)그게 문제라 생각 안 한다. 그렇게 행복한 사람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 “한국인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걸 알면 행복해.. 더보기
아빠가 자꾸 삐져! 득구야, 이거 뭐 아빠가 더 날카롭고 딱딱해지니까 할 말이 없다. 요즘은 너를 대할 때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말투도 사납고 그러네. 이유가 없진 않아. 어젯밤엔 밤 11시가 돼서야 갑자기 니가 버스도 끊긴 친구 집에서 외박 신청을 했잖아. 그리고 오 늘은 아빠가 일하고 4시쯤 들어왔을 때까지 컴퓨터만 하고 있더라. 인정하지? 그 뿐만이야? 4시 반 쯤 어항 물을 갈자고 했더니 10분 있다가 하자고 해서 기다렸더니 5시 반이나 돼서야 움직 였고, 결국 6시 반 수학과외 시간에는 10분 가까이 늦었다. 그게 돈으로 따지면 얼만데? 아빠가 쫀쫀하제? 득구가 고등학교 입학하고 처음 어항 물을 갈았다. 득구가 당번이니까. 하여튼 니 상태, 니 기분 그런 것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니 모습에 연연하게 되네. .. 더보기
할매는 살아있다 1919년생 우리 할매의 연세는 99세. 하루 24시간 한 달 720시간 1년 8760시간, 그렇게 5년 4만3800시간을 꼬박 요양병원 침상에서 누워 있던 세포들…. 잠자고 있던 할매의 체세포가 다시 기지개를 폈다. 시작은 5월 4일 낮 12시 30분께였다. 서울서 온 둘째 손녀 규리가 잠자고 있던 할매의 세포를 깨웠다. 몇 개가 남아있을지도 모를 할매의 체세포가 일제히 기지개를 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4시간 뒤. 온 몸의 세포를 모두 일으켜 세운 건 훤이였다. 몇 달 전부터 엄마 세진이가 보낸 동영상으로만 볼 수 있었던 아이였다. 내가 스마트폰 동영상을 보여드리면 할매는 마치 눈앞의 아이를 대하듯 “어루루 까꿍” “어루루 까 꿍” 했었다. 그리고 30분 뒤인 오후 5시에 내가 병실에 들어.. 더보기
10년 전 창원 소답동 골목 자, 그러면 지금부터 정확히 11년 전의 소답동 골목으로 가보실까요~ 골목과 사람(11)창원의 시작 북동 옛 창원장 골목 일천년 역사 창원부의 중심 장터 이어지던 옛 골목 흔적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5월 27일 토요일 조선 태종 때인 1408년, 이전의 ‘의창’과 ‘회원’이 통합되면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붙인 ‘창원부’가 들어섰다. 현재의 마산과 창원, 진해와 함안 일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행정구역에 군사적 성격이 강조되면서 ‘창원대도호부’가 된 것만 보더라도 이 지역의 비중을 읽을 수 있다. 창원부일 때나 대도호부일 때나 그 중심은 창원면(부내면, 혹은 시기에 따라 창원읍)으로, 조선시대에 축조됐던 읍성이 그 지리적 범위를 전한다. ..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소답동 창원 소답시장은 지금이야 동네시장으로 쭈그러들었지만 한때 '창원시장'이었다. 어르신들이 “창원장 간다” “창원장 선다” 할 때 바로 그 장이다. 그만큼 창원을 대표하는 장이었 다. 2일·7일장이니 오늘도 장이 섰다. 오후 2시 소답시장 안내판 밑에 ‘600년 전통의 장’이라고 돼 있다. 시장만 그런 게 아니다. 소답동이 예전에는 창원의 중심이었다. 1408년 조선 태종 때 이곳 의창과 옛 마산인 회원을 합쳐 ‘창원’이란 지명이 생긴 이래 줄곧 그랬다. 대도호부, 창원향교, 창원읍성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지금은 107만 대도시가 된 창원시의 모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팍팍한 서민들의 삶에 중심이니, 모태니 이런 말은 별 의미가 없다. 개교 100년을 넘긴 창 원초교 근처에 1467년 축성된 창원읍성의.. 더보기
철학하는 득구 득구야, 요즘 니가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내가 알아서 하께. 이거야. 그냥 좀 놔둬. 이러기도 하지. 그 말을 들으면 아빤 무안하기도 하지만, 오늘 가만 생각하니 뭐 기분 나쁜 이야기도 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니가 스스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그건 철 학을 하기 시작한 거라고 말이야. 나는 철학을 어렵게 생각했어. 플라톤, 소크라테스, 칸트, 니이체…. 계몽주의, 실존주의, 더 이상 생각도 안 난다. 어쨌든 철학자들 이름이나 인식하지 못하는 주의를 연상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너의 말을 들으면서 철학이란 게 내 근처로 바짝 다가왔어. 책 속의 이론을 넘어서서 말이 야. 니가 왜? 왜? 왜? 라고 묻기 시작했거든. 왜 그래야 되는데? 왜 공부해야 되는데? 왜..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가음정동 눈앞에 동화책이 펼쳐졌다. 자이언트 트리. 영화 아바타 속 거대한 나무를 연상시킨다. 창원시 가음정동 기업사랑공원 안에 있는 유아물놀이터다. 이 자리는 10년 전 가음정동 골목 입구였다. 유명했던 ‘모녀감자탕’ 집에, 족발집에 선술집이 줄줄이 늘어섰다. 그렇게 시작된 골목 안쪽 ‘쓰레 트집’은 재개발 철거의 끄트머리에서 끈질기게 버티던 노동자들의 안식처였다. 공원 안에 전시된 초등학교 6학년의 동시처럼. ‘아빠는 멋있는 신사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고물이 되었다/ 고물이 된 신사 힘들어서 녹이 쓴 신사/ 그런 신사를 황홀한 봄 햇빛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싶다’ 이제 그 골목 자리는 사라졌다. 작은 공원 하나를 선물로 주고,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였다. 창원대로 건너편 소라아파트는 10년 전 그대로다..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외동 창원병원 옆 외동 골목을 기억하는 이가 지금 있을까? 지금 이 시기에는 온 천지가 유채꽃 밭이 되는 이곳에서 150집이 넘고 3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던 15년 전 외동마을을 떠올릴 수 있을까? 골목 끝 당도산을 넘으면 내동마을이 나왔고, 그래서 외동이라 이름 붙여진 마을. 1980년대와 90 년대 가난한 슬레이트 지붕의 이 동네는 얼기설기 20개 30개가 넘는 단칸방을 만들어 창원공단 노동자들에게 세를 주면서 달동네라고도 불렸다. 11년 전 2006년 ‘골목과 사람’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땐 철거작업이 거의 마 무리될 때였다. 집 있고 땅 있는 사람들은 인근 중앙동이니 토월동이니 사파동이니 하며 다들 옮 겨갔지만, 마땅히 오갈 데 없던 사람들은 황량한 마을의 끄트머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여.. 더보기
4대 100년 - 요즘 좀 힘든 진구 진구야, 요즘 사는 게 좀 힘들제? 그저께는 저녁에 집에 와서 인생이 꼬여, 오늘은 되는 일이 없었어 그랬지. 아침부터 지각했다고 담임선생님한테 혼나고, 리코더 못 불어서 학교에 남고, 태권도 도장 관장님 한테는 차타는 시간에 늦었다고 꾸중들었다면서. ㅉㅉㅉ 어쩌면 그렇게 아빠랑 똑 같냐. 요즘 아빠도 거의 '따'거든. 매일 출근하면 보는 도청 사람들이랑 막 웃고 떠들고 재미있게 생활하고 싶은데 그게 영 안 돼. 이상하게 딱딱하고 어색하고 그렇거든. 내가 하는 일을 그닥 반기지 않으니까 도청 분들도 어색해하고, 나도 뭐 쌀쌀해지고 그래. 마치 물 과 기름이랄까. 자주 만나는 분들이라도 웃고 반기고 떠들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돼. 일소일소 일노일 노 라고 했는데 말야. 무슨 뜻이냐고? 한번 웃으.. 더보기
4대 100년 - 2017년 4월 득구 득구야, 우리에겐 좀 다른 봄이야. 고 1인 된 너는 더 피곤해졌고 예민해졌어. 됐어, 싫어, 가만 놔둬, 내가 알아서 하께, 이런 말이 부쩍 많아졌어. 그저께 중간고사 준비하라는 엄마한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대학 안 갈 수도 있어 했 다면서? 어제 내가 다시 물었을 땐 왜 해야 하는지는 알아, 그냥 하기 싫어 했지. 왜 해야 하는데 라고 아빠 가 묻자 장래를 위해서… 라고 아주 낮게 말했던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장래를 위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서. 그런데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걸 피부로 느끼고 있을까? 아빠 고 1때가 생각이 나. 심각한 사춘기였지. 사춘기라는 일반적 표현보다 몇 배는 더 깊은…. 그때 아빠는 말을 잘 하지 않고, 혼자 생각하는 게 많았어. 주로 인간과 신, ..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 부림시장 4월 2일 부림시장 골목 개나리 진달래 벚꽃… 온갖 봄꽃 만발했던 오늘 마산 서원곡 산복도로에서 추산공원을 넘어 할머니가 입원해계신 오동동 요양병원까지 봄나들이를 하던 중…. 옛날 강남공원 있던 자리를 지나다 문득 발견했다. 부림시장 닭전골목. 고2 때였던 1982년 어느날 친구 누군가를 따라와 낮은 천정의 다락방에 웅크리고 앉아 닭곱창에 처음 쐬주를 마셨던 곳. 그날밤 가족들을 속이고 멀쩡하게 누워자다 끝내 모든 걸 올려버리면서 탄로나버렸던 기억 속의 장소. 그리고 몇 년 지나 마산 가포에서 방위 받을 때였던 1988년 방위 고참과 다시 찾았던 곳. 한 달에 한두 번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니 강좌철학 같은 책을 함께 읽으면서 스스로 빨간 물을 묻히기 시작했던 곳. 그렇게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던 닭전골목이..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 창동 마산 창동골목 하면 사람들은 학문당 쪽 예술촌 골목을 연상한다. 하지만 10년 전 내가 찾았던 골목은 창동 차 없는 거리 맞은편 빵집 고려당과 금은방 황금당을 입구로 하는 옛 골목이었다. 까마득한 옛날 1760년에 세워진 마산조창과 연결되던 골목이라 하여 ‘백년골목’으로 불린 창동 최고의 옛 골목이었다. 우선 10년 전 기록부터 보자. 골목과 사람(6)마산 동성동 불로식당-해거름 골목 지역예술가들이 ‘술시’ 에 찾던 선술집 추억 서린 골목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4월 15일 토요일 이 골목은 마산시 남성동 파출소 직전 대신증권 등의 금융가에서 창동 ‘차 없는 거리’로 연결되는 통로다. 대신증권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 경남은행 제일은행 등 한때 마산 금융가의 중심이.. 더보기
10년전 그 길을 걷다 - 창원 우곡사 창원시 동읍 우곡사 가는 길은 상상하게 하는 길이다. 10년 전 처음 그 길을 걸을 때처럼 자여못 옆길(이전 서천못, 지금은 나무산책로가 만들어졌다.)을 걸으면 못이 생기기 전에 거긴 무엇이 있었을까 상상했다. 마을이 있었을까? 못 속의 저 버드나무는 그때 무슨 모양이었을까? 못 윗길에서도 상상은 계속된다. 철조망 너머 저 국방과학연구소가 들어서기 전에 거긴 뭐가 있었을까? 논밭이 펼쳐지고, 결코 작지 않은 마을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을 거다. 자여못 초입에서 시작해 20분 정도를 걸으면 우곡사 언저리 골짝이 좁아진다. 오른쪽 정병산 주봉과 왼쪽 지봉의 간격이 현격하게 좁아진다. 길이 가팔라지면서 숨이 차지만 왼쪽 실개천 물소리를 따라 걸음을 조금 늦춘다. 그렇게 40분을 걸으면 나타나는 우.. 더보기
4대 100년 바래기 고향집 3월 9일 오전 10시 반. 요양병원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쩔 수 없이 그 냄새를 맡게 된다. 어르신들 기저귀를 갈 때 나는 냄새. 오전 이른 시간 병실 방문은 쉽지 않다. 모두 여섯 명 할머니들 기저귀 가는 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오늘도 두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서야 들어갔다. 할매는 오늘도 같은 이야기로 외손자를 맞이한다. “왔나?” “만다 왔노 추븐데?” 반가운 표정, 안타까운 표정... 금방 금방 바뀐다. “무슨 청승으로 이레 오래 살꼬? 하루 속히 눈을 감아 삐맀으면...” 할매는 늘상 그렇게 말을 하셔도 간병인 말로는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할매가 “내가 벌써 구십다섯 아이가!” 했다. 나는 “구십아홉 아임미꺼 아홉!” 하고 정정했다. “아이고 뭄써리야!” 요즘 할매는 볼.. 더보기
4대 100년 아흔아홉의 할매 4대 100년 아흔아홉의 할매 2월 27일 오전 10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ㄱ요양병원 6층의 한 병실. 문을 열자 왼쪽 세 침상 중 맨 안쪽에 나의 외할매 신 씨가 누워있다. 눈을 감은 채. 얼굴만 드러낸 채 온 몸을 분홍색 이불로 덮었다. 병실 왼쪽 할머니 셋은 모두 그렇게 누워 있고, 오른쪽 할머니 둘은 앉은 채 빠꼼히 나를 바라본다. 오늘은 월요일인데도 주말 간병인이 자기 일에 열중해 있다. 이 방은 TV 볼륨도 낮고, 보는 이도 없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할매 하고 살짝 부르면서 방금 들어오기 전에 씻은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고는 신 씨 머리카락에 갖다 댔다. 그렇게 하면 금방 눈을 뜬다. 그냥 기력이 없어 눈만 감고 있을 뿐 잠들지 않았다. 왔나? 그래 집은 별고 없고? 이름은 바로 기억하지 못.. 더보기
3대가 번개처럼 갔다온 순천 2월 23일 오전 7시 30분. 휴가 마지막날 일찍 눈을 떴다. 3일 집에 쳐박혔으니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가족끼리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서라도 갈까 말까 마음이 무거웠다. 불현듯 어제밤 마누라가 한말이 생각났다. 되는 사람들끼리 가아~ 그래 맞다. 되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후다닥 오전 9시에 마산 구암동 본가에서 여행을 출발하게 됐다. 아버지 엄마, 막내 준이와 함께 가는 순천 여행이다. 망설이고 주저했던 것에 비해 물 흐르듯 자연스런 시작. 쉬엄쉬엄 10시반 쯤 도착했던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의 우동맛이 분위기를 도왔다. 얼큰 달 콤했다. 엄마 왈 "다른 휴게소 우동은 맛도 없더마는 여긴 정말 맛있네." 초6 되는 준이 사진실력이 아빠보다 훨 낫다. 12시쯤 도착한 순천자연휴양림은 엄마가 ..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가다 - 마산 어판장 ‘바다오염 방지하여 수산자원 보호하자’ 그렇게 한쪽 기둥에 뺑끼칠까지 해두었건만, 10년이라는 시간은 바다도 어판장도 가마두지 않았다. 바다는 땅이 돼가고, 마산 남성동 어판장은 이미 주차장이 됐다. 10년 전 마산 아침을 열어 제치던 곳, 새벽 6시면 어김없이 경매사가 어느 한쪽 우뚝한 곳에 서서 “##$$%% && ÆÆÐД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했다. 반대편 중매사들은 손가락을 한 개 두 개, 위로 아래로 역시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 낙찰을 보곤 했다. 생물 그대로의 활어, 냉동을 거친 선어가 그렇게 장사가 잘 될 때에는 하루 몇 억 원어치 이상 팔려나갔다. 그래서 마산이 창원에 통합되기 전에는 마산 아침을 연다고, 마산 경제를 연다고 마산시장이 해마다 연초 초매식 때 참석을 했다. 나도 골목 .. 더보기
아파트키드 진구 - 네모 2 2017년 2월 6일 아침. 진구는 8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엄마 차로 함께 가지 못할 바에야 10분이라도 더 자는 게 낫다는 게 아 빠 생각이었다. 하지만 8시 20분에는 학교에 가야 한다. 8시 40분이 넘으면 지각이다. 그리고 아빠는 진구가 지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결국 20분에 집을 나섰다. 그것도 음식쓰레기 봉지를 든 아빠가 아파트 현관 문을 열고 먼저 나갔고, 거기서 진구를 불러냈다. 처음엔 양말도 안 신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고, 두 번째는 가방을 안 매고 나 왔다가 다시 들어갔고, 세 번째는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운동화 를 신고 나왔다. 1층까지 내려가 아빠가 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자 진구가 말했다. “차 안타고 갈 거야?” “응. 오늘은 그냥 걸어가. 지각 안.. 더보기
아파트키드 진구 - 네모 모처럼 진구와 집에 남았다. 진구는 쿨쿨 자고 나는 이런저런 일을 했다. 평온했다. 9시쯤 진구가 깼다. 아빠 나 병원 안 가면 안 돼? 가야지. 그래야 내일 방학식 하고 실컷 놀지. 싫어 약 먹기 싫어. 머리가 조금 아팠다. 주사 맞고 약 먹어야 내일 실컷 놀지. 약 안 먹으면 안 돼? 그래. 주사만 맞으면 돼. 그러니까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해. 난 다시 빨래를 널었다. 머리가 조금 더 아팠다. 감기 기운인가 나도? 빨래를 다 널고 배가 출출해 커피랑 코코아를 만들었다. 진구야 핫초코 먹자. 이리 나와. 아빠 나 오늘 학교 안 가면 안 돼? 애들이 독감이라고 말도 안 건단 말이야. 머리가 더 아팠다. 무슨 엉뚱한 소리야, 빨리 일어나 핫초코 먹어. 엉뚱한 소리 아니란 말이야. ... 지금 진구는 핫초.. 더보기
걷고 싶은 길 그 뒤 10년 - 봉암수원지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수원지길. 10년 전에는 그냥 마산 봉암수원지길이었다. 2005년 4월 16일자 에 실린 첫 ‘걷고 싶은 길’이었다. [걷고 싶은 길]마산 봉암수원지에 이르는 길 - 2005년 4월 16일 길은 길로 이어지니 찾지 못할 리 없다. 산을 두르되 넘지 않을 만큼 길은 세상의 낮은 곳을 찾아 다니니 사람이 닿지 못할 리 없다. 마산시 봉암동 수원지 가는 길은 도심 속 시민들 바로 곁에 있다. 한 두 시간 틈을 내 이곳을 찾아 걸으면 5분 이내에 도시와 단절된다. 울창한 숲과 숲속 구부러진 길에서는 도시가 보이지 않는다. 길은 마산자유무역지역 3공구 정문 맞은편 산해원교회 옆에서 시작된다. 마산에서, 창원·진해에서 이곳에 오는 시내버스는 많다. 여기서 수원지까지 1㎞의 길은 천천히 걸어서 .. 더보기
개헌 속에 지방은 어떻게 반영하지? 다가올 대선과 개헌이 지방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각별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집약되는 박정희 체제의 청산이라는 과제는 지방사람들에게 더욱 뼈저리 때문입니다. 권력과 자본, 인구와 대학 등 사회 전반의 수도권 집중. 그 속에서 지방사람들은 들러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방자치제도요? 1995년에 그 형태를 갖추기는 했지만, 사무도 돈도 인물도 중앙에서 위임하거나 수혈하는 형식적 지방자치에 그칩니다. 며칠전 국회에서 열렸던 지방분권 결의대회에서는 다가올 대선과 개헌 과정에 이렇게 지방을 반 영하자는 의미있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지난 23일 자 에 제가 쓴 기사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에 '지방분권 국가'로 명시하자"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등 다가올 대선과 개헌 국면에서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려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