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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통영 서호시장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서호시장-강구안-중앙시장 통영 사람이 통영을 말하는 것과 여행자가 통영을 말하는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여행자의 마음과 원주민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서피랑을 다시 찾으면서 10년 전처럼 그곳에서 태어난 박경리를 말했고, 물었고, 글로 썼다. 하지만 그곳 명정동 노인회관 벽면에다 이정숙 할매는 그 대답 대신 이런 시를 붙였다. “젊어서 먹고 살 길 막막해서/ 시작했던 일/ 섬마다 강냉이 튀박하러/ 다니며 살아낸 아픈 세월// 사람들은 진짜/ 나를 부를 때 이름 대신/ 강냉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 이름/ 들을 때마다 아프다/ 진짜로” 택시기사에게 “윤이상, 박경리 선생이 통영 분들 많이 먹여살려주시냐”고 물었더니 말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통영사람들 .. 더보기
지방자치 실전상식 - 지방에 대한 공개토론 지방자치 실전상식 - ‘지방’에 대한 공개토론 최근 나에게 두 번의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지방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지방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일종의 ‘지방자치 실정상식’ 테스트라고 할까? 우선 지난 25일에는 창원명곡고 1·2학년을 상대로 ‘기자’라는 직종을 소개했다. 그때 나는 ‘인터뷰’라는 취재방법을 소개하면서 한 가지 소재로 질문을 몇 개 던졌다. 1학년 13명, 2학년 13명, 모두 26명이었다. “너희들 ‘인서울’이란 말 아니?” 모두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들었니”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다는 학생이 1명, 그 외는 중·고교 때에 들었다고 했다. “누구한테 주로 들었니?” 대부분 학교와 학원 선생님, 부..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통영 도천동 2006년 골목과 사람(32)통영 도천동 윤이상 생가 주변 ‘음악의 거장’ 소리 본능을 일깨웠던 길...옛 굿 장단·바다의 소리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06년 10월 30일 월요일 윤이상 선생은 1995년 타계할 때까지 고향의 소리를 그렇게 그리워했다. 이런 말까지 했다. “엄마 뱃속에서는 엄마 얼굴을 몰라요. 마찬가지로 고향에 있을 때는 고향을 모르죠. 이역만리 떨어져 있으니 이제 고향의 얼굴을 알게 된 거죠” 그가 태어난 통영시 도천동의 바다와 갯가 노동요 속에 윤이상 음악의 원형이 있다. 어릴 때 뛰어놀았던 도천동 골목 안에 별신굿이나 오광대 가락으로 유명한 통영의 민간음악이 흘렀다. 1935년 일본에 가기 전까지 체계적인 음악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던 그에게 소리 본능을 심었다. ▲ 번..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통영 도천동 2017년 윤이상이 태어난 통영시 도천동 골목을 10년 전 찾았을 때 나는 윤이상에 대해 이렇게 썼다. “1995년 타계할 때까지 그는 고향의 소리를 그리워했다. ‘엄마 뱃속에서는 엄마 얼굴을 몰라요. 고향에 있을 때는 고향을 모르죠. 이역만리 떨어져 있으니 고향의 얼굴을 알게 된 거죠.’ 그가 태어난 도천동 갯가 노동요 속에 윤이상 음악의 원형이 있다. 남해안별신굿, 통영오광대 가락이 그것이다. 1935년 일본에 가기 전까지 체계적인 음악공부를 할 수 없었던 그에게 소리 본능을 심었다.” 그래, 그냥 거저 쓰이는 글은 없다. 10년 전에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윤이상을 연구했을 것이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단편적 내용이었겠지만…. 그렇지만, 연구를 했던 것이다. 통영 토박이 최정규(당시 55세) 시인이 .. 더보기
지방자치 실전상식 - 왜 지금 지방자치인가? 왜 지금 지방자치 실전상식인가? 왜 지금 나는 ‘지방자치 실전상식’ 운운하는가?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갖고 시작했는데, 갑자기 툭 던져진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나? 아니면 지금 이 시기에 중대하거나 급격한 변화가 있나? 질문은 이어졌고, 나는 더 주눅 들었다. 주민자치 사례, 지방소외 현실, 중앙-지방 갈등과 해소 방안, 지방의회 인사권 등 10회째 이어지는 ‘지방자치 실전상식’ 블로그 게재가 어떤 분들에게는 갑작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어진 질문의 답은 비교적 쉽다. 어떤 계기가 마련돼 있거나, 지금 당장 무슨 중대하거나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로서는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 지금 말문이 술술 열리진 않지만, 내가 지방자치 .. 더보기
지방자치 실전상식 - 경남의 주민자치 사례 지방자치 실전상식 - 경남의 주민자치 사례 대전시 유성구의 주민참여예산제, 순천만에서 정원도시로 이어진 순천시 생태수도 추진, 사람이 반가운 수원시의 휴먼시티 조성…. 이시원 경상대 교수가 강연을 듣던 공무원들이 졸고, 빠져나가려 하자 꺼내들었던 비장의 카드가 이처럼 지방자치를 살아 꿈틀거리게 만드는 실제 사례들이라 했다. 공통점은 단체장이 바뀌어도 10년 이상 지속됐다는 것이다. 관련 조례와 예산·부서·인력을 확보하면서 정책 지속성을 보장했다. 그러면 경남에는 그런 사례가 없나? 경남도와 18개 시·군, 1991년 자치의회 부활 이후 25년 이상 지속된 경남 지방자치 역사 속에 모범 사례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례를 찾는 노력을 아껴 지난 4년 ‘홍준표’가 선사한 도민들의 직접 지방자치..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 - 통영 동피랑 2006년 골목과 사람(35)통영 태평동 주전골 바다로 일나가던 남자들은 술담배로 일찍 저세상...할머니·꼬마들만 다닥다닥 붙은 슬레이트집 지켜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06년 11월 20일 월요일 통영의 태평동 ‘동피랑’ 언덕에는 주민 이(여·69)씨의 인생유전이 있다. 헉헉거리며 고갯마루에 올라서야 그 사연을 만나게 된다. 그는 끝까지 이름을 밝히기도,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거부했다. 다만 멀리 세병관이 바라보이는 자신의 슬레이트집 빨랫줄 쪽으로 뒤돌아서서 괜히 널려진 옷을 만질 뿐이었다. ▲동피랑 꼭대기의 이씨 할매집. 한사코 빨랫줄에서 뒤돌아서지 않았다. 사진/이일균 기자 길따라 펼쳐지는가파른 인생유전 “여기 집이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한 집처럼 보이제. 사실은 세 채요. 다 주인이 안..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 - 통영 동피랑 2017년 통영 동피랑 2017년 아침시장은 서호시장, 저녁시장은 중앙시장이라고 했다. 통영 사람들이. 2017년 9월 29일 오후 2시께 동피랑 입구 중앙시장은 그야말로 ‘뽁짝뽁짝’, 손님들 대부분 관광객이다. 동피랑이 이렇게 전국 관광객들을 모으는 건가? 동피랑 입구 계단 찾기도 어려울 정도다. 힘들게 동피랑 벽화골목 입구를 찾았다. 입구부터 감탄했다. 11년 전 초라했던 동피랑 골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참, 어떻게 벽화를 그릴 생각을 했는지? 벽화를 그린 게 또 어떻게 달동네에 천지개벽을 가져온 건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벽화골목 입구 계단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숨을 돌렸다. 감탄도 잠시…. 벽화골목 입구를 돌아나가자 말자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골목이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 폭..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 -통영 서피랑 2006년 골목과 사람(33)통영 뚝지먼당 골목의 박경리 생가 속 마을, 지금은…통영 역사의 시작 통제영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11월 06일 월요일 도천동에서 무전동 방향으로 산복도로를 달리던 중에 통영 토박이 최정규(55) 시인이 충렬사 앞에서 차를 세우게 했다. 맞은편 서문고개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서문로로 잠깐 빠졌다가 곧바로 차를 세워야 오른쪽 서문고개 오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 ▲ 서문고개 위 먼당 주민들. 사진/이일균 기자 도로 옆 간판에는 ‘뚝지먼당길’이라는 표시가 돼 있다. 고개의 사연만큼 부르는 이름도 여럿이다. 통제영 서문이 있었다 해서 서문고개, 혹은 ‘서피랑’이라고 했다. 비슷하게 ‘서문고랑’이라거나, 성 끄트머리라서 ‘성날이라는 이름도 달렸다. 무엇보..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 - 통영 서피랑 2017년 11년 전 2006년 가을 통영에 왔을 때에는 무전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서호시장에 갔다가 서피랑에 갔다. 통영농협 옥상에서 바라본 서호시장의 새벽 활어시장과 대장간, 시락국집을 먼저 찍고, 서피랑 입구 서문고개에 섰었다. 11년이 흐른 2017년 9월 29일 아침에는 광도면으로 옮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서호시장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가 서문고개 입구에서 내렸다. 서호시장의 ‘활기’와 ‘생기’보다 서문고개에 새겨진 박경리의 ‘한’이 먼저 생각났다. 길 오른쪽 세병관, 통영문화원을 지나치고 곧바로 서문고개 입구에 섰다. 서문고개 입구. 박경리의 3장 원고지를 그대로 옮긴 새김비가 있다.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한실댁은 코를 풀고 멍멍한 소리로 말하며 마당으로 내려와 용란의 손을 잡았다. 어두.. 더보기